로맨스헤라 이야기: The tale of Hera

클로엘(CLO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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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타카 음유 시인의 기교 섞인 목소리도, 암초에 앉아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음탕한 목소리도. 나의 이야기를 담기엔 적합하지 않았기에,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올림포스와 인간 세상에 나에 대한 소문과 악명이 자자하단 걸 잘 알고 있다. 그것들은 한낱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신들은 언제나 이야깃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음껏 뜯고 씹으라고 내버려 뒀다. 이젠 진실을 말해 보려고 한다. 지금껏 무수한 소문에도 아무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왜 지금이냐고? 올림포스 신들의 전성기가 끝나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야, 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오직 나 자신의 목소리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로, 이건 나의 이야기다. 오롯이 나 자신의 시점으로 다시 써 내려간 이야기. 그것은 가이아와 제우스 간의 양차 전쟁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나의 벗 메티스를 위한 만가이며,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트로이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변론인 동시에 내가 사랑한, 이 세상에서 올림포스의 제왕인 제우스를 상대로 겁을 상실하고 대항한 유일한 인간인 한 남자에 대한 연서이다. 나는 아직 역사가 써지지 않은 새로운 땅에서, 현명한 켄타로우스 한 마리와 아가필리아라는 이름의 훌륭한 조수의 도움을 받아 이 기록을 완성하였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읽고 있다면, 그건 지혜로운 아테나의 허락이 있었음을 전제할 것이다. 이야기를 완성한 뒤 그녀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내뱉어야 할 말을 내뱉었고, 써야 할 말을 다 옮겨 썼으니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낀다. 나는 헤라다. 올림포스의 최고 여신, 제우스의 아내, 크로노스의 딸이 아니라 날 그저 헤라, 라고 기억해 준다면 내가 뜻한 바를 다 이룬 거라 생각하며 이만 양피지의 마지막을 장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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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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