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붉은 비에 젖어 든 달빛

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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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련 가문의 수장인 한 좌보의 딸 은소는 아비의 뜻에 따라 율도국의 왕 무휼과 가례를 올린다. “저는 언제 죽게 되는 겁니까?” 나라를 좌지우지하며 선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한 좌보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을 무휼. 그렇기에 그녀는 죽을 자리에 제물로 바쳐진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치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아비의 무관심 속에 노비처럼 살아온 은소에게 중요한 것은 가문이 아닌 생존이었는데……. * “저는 전하의 적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전하의 사람이 되려면 어찌해야 하나요?” “방자한 계집이구나.” 무휼이 거칠게 은소를 낚아채 올려 그대로 금침에 눕혔다. “네가 한 말, 너 스스로 증명해 보아라.” 그가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미리보기 “내가 마신 약이 무엇인지 아오?” 그의 음성은 여전히 차갑지만, 오싹한 울림은 사라져 있었다. 은소가 대답했다. “약이 아니라, 달맞이 술입니다. 좌보가 정적을 제거하거나 설득할 때 쓰는 술인데, 사내를 미치게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이 술을 나에게 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오?” 그의 가슴에 기대져 있는 상태였다. 왜 이런 자세로 그가 질문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몸이 녹는 듯했다. 누군가 이렇게 안아 주기를 원했는데, 그 소원이 막 이뤄졌다. 은소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듯 보다 더 기대며 말했다. “후사를 얻기 위함이겠지요.” 무휼이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둠에 적응된 상태라 그녀의 표정을 보는 데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하하하. 그가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가능할 거 같소?” 은소가 그에게 기댔던 몸을 바로 세워 무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안림성 패배 후 부왕을 잃고 왕위에 올랐지만 망나니가 되었다. 그런 그가 어떤 대답을 바라며 묻는 걸까. 그것을 알자면 자신부터 솔직하게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회임을 했다면, 지킬 겁니다.” 무휼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번득였다. 그러나 은소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이는 제가 알아서 지킬 테니, 전하께서는 절 평생 곁에 두시면 됩니다.” “아주 영악한 사람이군.”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은소가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그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무휼은 멈칫했다. 그녀의 숨결이 너무도 달콤하며 가벼운 입맞춤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이미 해갈된 줄 알았던 갈증이 다시 그의 목구멍을 태웠다. 분명 아까 술기운은 다 떨쳤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까보다 더한 욕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포악스러울 정도로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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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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