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괴물의 어린 신부

도토리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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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테온 제국의 전쟁 영웅, 레지온 백작. 황제는 ‘괴물’이라고 불리는 그를 길들이기 위해서, 멸망한 제국의 황녀 세르미나를 그에게 시집보낸다. 레지온 백작의 어린 신부 세르미나는 무럭무럭 자라서……. ** 사슴은 처음 숲 속에서 만났을 때처럼 내 발치에 바짝 붙었다. 그날 엉뚱한 순간에 어미라고 각인이라도 됐는지, 내가 천천히 뒷걸음질하자 필사적으로 달라붙었다. 호숫가 방향으로 유도하자 졸졸 잘 따라왔다. 호숫가와 사슴은 환상적으로 잘 어울렸다. 뒷정리를 하던 고용인들의 입에서 탄성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착하지. 물.” 물가에 가까이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물을 떠올려 사슴에게 들이밀자 할짝거리며 받아 마셨다. 손안에 물이 사라지자 아무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호숫가의 물을 마시는 사슴의 모습에 임무를 완수했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드디어 카이드가 원하는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풍덩. 마치 신비로운 동화 속의 한 장면같이 목을 축이던 사슴이 불식간에 물속에 처박혔다. 무릎을 꿇은 채로 어안이 벙벙한 내 앞에 그림자가 길게 졌다. 카이드였다. 멀리서부터 한달음에 온 것처럼 씩씩거리던 카이드는 내 팔 아래 손을 넣어 나를 일으켰다. “다른 놈 앞에서 무릎은 왜 꿇어요? 그거 제게만 해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나는…….” 내가 당황하는 사이 주변의 고용인들이 귀를 틀어막고 신속하게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다른 놈? 그야 뿔이 있으니 수사슴이긴 하지만, 저건 동물이잖아. “백작님 손은 제 건데 저 개 같은 새끼가 입을 댔잖아요!” 개가 아니라 사슴인데……. 푸드득, 하고 여유롭게 수영해서 물을 빠져나온 사슴이 몸을 터는 소리가 적막한 정원에 내려앉았다. 카이드는 다시 한 번 사슴을 발로 차 물속에 처박았다. 발버둥 치는 사슴의 당황이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호수를 만들어서…… 그러니까, 카이드 네가 그랬잖아. 사슴이 목을 축이게 호수를…….” 카이드는 물에서 나오지 않고 호수 위에 떠 있는 채로 이쪽을 보며 눈치를 살피는 사슴을 노려보았다. 형형한 눈빛에 사슴이 움츠러들었다. “뭘 쳐다보는 거야. 재수 없는 게.” 사슴과 싸움이라도 벌일 기세인 카이드의 바짓단이 젖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사슴을 물에 처박을 때 튀긴 물이었다. “카이드, 젖었구나. 옷을 갈아입자. 감기 걸려.” 카이드가 사슴을 노려보던 시선을 나에게 옮겼다. 순식간에 볼이 붙잡히고 입술이 맞붙었다. 카이드의 혀가 갈급하게 입 안을 휘저었다. 깜짝 놀랐지만 곧 눈을 감고 익숙한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한참을 섞이던 혀는 질척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카이드는 숨을 몰아쉬는 내 턱을 들어 올렸다. “다신 안 그럴 거죠?” “응…….” 그 박력에 생각보다 대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카이드는 마지막으로 사슴을 노려본 후 내 팔을 껴안고 저택 안으로 끌었다. ……최근에 나 모르게 사슴한테 공격이라도 당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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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 하나, 아들 하나
2 황후무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