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없는 남자 (어게인 시리즈 2)

로맨스미워할 수 없는 남자 (어게인 시리즈 2)

최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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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청순한 이미지로 잘 나가는 여배우 최서린. 가장 친한 친구의 오빠이자 유원그룹의 사장인 강지혁을 만나 지독한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사랑은 질투, 의심, 오해로 눈이 먼 지혁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서린의 사랑을 의심한 것도 모자라 그녀의 뱃속에 아이까지 지혁은 의심하는데... 6년 후. 자신과 아들 앞에서 피 눈물을 흘리는 지혁을 서린은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작품 속에서 “지혁 씨! 지혁 씨!” 서린의 목소리에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지혁의 몸이 움찔거렸다. 두어 발짝 지혁에게 다가간 서린이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혁 씨! 나 좀 봐요. 응? 나 좀 봐 줘.” 언제나 그렇듯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옷차림의 지혁이 천천히 몸을 돌려 찌를 듯 차가운 시선으로 서린을 바라보았다. 그 싸늘한 눈빛에 놀라 할 말을 잃은 서린이 잠시 휘청 거렸다. “박영석! 너 뭐하는 놈이야? 내 말이…….” 영석을 다그치는 지혁의 말을 가로채며 서린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밀치고 들어온 거예요. 영석 씨 잘못 없어요.” 커다란 서린의 두 눈이 지혁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5분, 5분이면 돼요. 그 정도도 안 되나요?” 급하게 달려 온 듯 재킷 하나 걸치지 않고 하얀 블라우스에 재색 스커트 차림인 그녀를 바라보던 지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영석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영석은 조용히 사장실의 문을 닫고 나갔다.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서린을 바라보다 흘깃 손목시계를 쳐다본 지혁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향했다. “그렇게 5분 동안 서 있다 나갈 건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서린이 지혁에게 한발 다가왔다. 그리고 손에 꼭 쥐고 있던 구겨진 신문을 지혁의 앞에 내밀었다. 그 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이게 뭔지 설명해줘요.” 무표정한 얼굴로 흘깃 신문을 쳐다본 지혁의 눈동자가 다시 서린에게 돌아왔다. “상세하게 설명이 나와 있는 기사를 보고 나더러 설명을 해달라는 건 또 무슨 소리야?” “이유가 뭐예요? 나에게는 한마디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렇게 약혼을 파기한다고 기사를 낸 이유가 뭐냐고요?” 다소 흥분한 듯 언성이 높아지는 서린을 쳐다보며 지혁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글 읽을 줄 몰라? 거기에 다 써 있을 텐데. 성격이 맞지 않아서 이쯤에서 관두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너무나 차분해 보이는 지혁의 모습과는 달리 서린은 자꾸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다. “진짜 이유요! 느닷없이 당신이 나를 버리기로 한 진짜 이유를 말하란 말이에요!” 냉기가 가득한 얼굴로 서린을 잠깐 동안 바라보던 지혁이 성큼성큼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가 서랍을 열고 네모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들었다. 다시 서린에게로 걸어온 그가 그녀에게 쓱 봉투를 내밀었다. 지혁에게서 봉투를 받아든 서린이 손을 밀어 넣어 안에 든 것을 꺼내들었다. 뜻밖에도 안에는 사진이 여러 장 들어있었다. “헉!” 사진을 바라보는 서린의 입에서 놀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호텔로 들어서는 여자. 그리고 방문을 사이에 두고 애절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여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 모두 그녀가 아는 인물이었다. 여자는 바로 자신, 그리고 남자는 정우진. 사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나신의 모습으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까지 여러 장의 사진들이 있었다. “더 설명이 필요한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의 손에서 사진들이 떨어져 바닥에 흩어졌다. 서린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냉소를 머금고 있는 지혁에게 향했다. “이, 이건…….” “훗!” 싸늘한 지혁의 웃음에 서린은 애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서린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걸, 이걸 믿는 거예요?” 서린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야! 지혁 씨! 제발 내 말 좀…….” “프린스호텔 1703호. 어쩌지? 그곳으로 들어가는 당신을 내가 봐 버렸는데. 그 안에 누가 있었는지는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더 잘 알겠지.” 놀란 얼굴로 입만 벙긋거리던 서린이 냉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지혁에게 다가가 팔을 움켜잡았다. “지혁 씨! 설명할게요. 설명할 수 있어요. 내가 설명…….” 지혁은 서린이 말이 다 끝내기도 전에 마치 더러운 것에 닿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팔을 떨쳐내고 한 발 물러섰다. “사람들을 불러서 널 끌어내기 전에 돌아가. 더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이 정도에서 끝내주는 것도 내 딴에는 널 많이 봐준 거니까.” 꽉 다문 잇새로 말을 마친 지혁이 몸을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대화를 거부하는 듯한 지혁의 등을 바라보는 서린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랑……해요.” 지혁의 등이 움찔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요. 제발, 제발……지혁 씨!”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서린이 지혁에게 한 발 한 발 다가서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요……나, 임신했어요.” 순간 지혁의 등이 움찔했다. 그 모습에 용기를 얻는 서린이 다시 그에게 한 발 다가섰다. “지혁 씨!”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던 지혁이 천천히 몸을 돌리고 서린을 향해 차갑게 웃었다. “그래서? 네가 임신한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 있지? 설마 그 아이가 내 아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서린의 얼굴이 차갑게 굳기 시작했다. “……지, 지혁 씨!” 파르르 입술을 떨며 경악으로 그녀는 비명 같은 외침을 질렀다. “낳는 것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겠군. 정우진과 강지혁 둘 중 하나의 자식이라면 말이야. 설마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 자꾸만 기울어지는 몸에 힘을 주고 선 서린이 주먹을 움켜쥐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나쁜 자식! 나쁜 놈!” 달려드는 서린의 양 팔을 힘껏 움켜쥔 지혁이 그녀를 내팽개치며 말했다. “최서린! 역시 당신은 명배우야. 억울하다는 그 표정, 분노에 찬 눈빛. 대단해. 그런데 어쩌지? 난 더 이상 최서린의 상대역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지혁을 향해 고개를 든 서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노에 찬 두 쌍의 눈동자가 서로를 향해 살기를 내뿜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에요.” 차갑게, 그리고 조용하게 내뱉는 서린을 향해 지혁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훗!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으면 뭘 믿지?” 지혁의 시선이 서린의 아랫배로 향했다. “그 아이도 참 불쌍한 인생이군. 방탕한 어미를 만나서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고 말이야. 차라리 지우는 건 어때?” 짝! 분노에 찬 서린의 눈을 바라보며 지혁은 자신의 왼쪽 뺨을 쓰다듬으며 차디찬 웃음을 흘렸다. “겁이 없군.”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지혁의 눈빛을 마주보며 서린은 차디찬 어조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네놈의 피를 받은 자식이 내 몸에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해.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내 손으로 뱃속의 아이를 꺼내버리고 싶은 기분이야.” 아주 잠깐 사이 지혁의 눈빛이 꿈틀거렸지만 서린은 눈치 채지 못했다. 이내 표정을 지운 지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린을 바라보았다. 그 어떤 반응이라도 기대했던 서린은 처음과 다름없는 지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체념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아닌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이게 뭐야? 이게 당신이 말한 사랑이야? 나를 앞에 두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게 당신 사랑이었니? 아니라고 해줘. 제발……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해줘. 지금이라도 모든 걸 설명해 달라고 말해줘.’ 서린의 눈빛이, 가슴이 소리 없이 애원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남자가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자신과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 강지혁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지혁의 무표정한 얼굴과 싸늘한 눈빛은 강지혁이라는 남자와 자신의 사랑이 끝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서린은 자꾸만 약해지려는 마음을 이를 악물고 다잡았다. 깊은 심호흡을 한 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혁에게 한 발 다가선 서린이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아랫배에 가져다 대었다. 그녀의 행동에 지혁은 잠시 잠깐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표정을 지우고 그녀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서린은 눈을 감고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기억해라, 아가야! 세상에 빛도 한 번 보지 못한 너를 죽이라고 명령한 네 아비를.” 번쩍 눈을 뜬 서린은 지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잊지 마, 당신! 당신 생애 첫 아이를 당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지혁의 손을 놓은 그녀는 몸을 당당하게 세운 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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