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사소한 시선
40
가을 기운이 느껴지던 늦여름 어느 날,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은 이수오. 고향으로 내려가 할머니의 집을 정리하면서 옆집 남자를 만나게 된다. 매번 손도 대지 않는데도, 새로운 음식을 마루에 놓고 사라지는 남자. 곧고 하얀 손가락, 푸른 핏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팔뚝, 땀이 흘러내리는 관자놀이, 순하게 처진 눈매. 어느 순간부터 그 남자를 눈으로 좇게 된다. “수오 씨의 팬이라서요.” 그냥 팬이라면 그런 눈빛을 할 리 없었다. 이 남자의 진심은 뭘까, 궁금해진다. *** “그쪽 거예요.” 나는 일부러 툭 하고 남자의 손끝에 상자를 가져갔다. 내 앞을 걷던 장신이 등을 움찔 떨며 멈춰 섰다. 돌아선 눈동자는 주변이 어둑해져서 무슨 빛을 띠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건….” “그쪽이 할머니께 구해다 준 것들이잖아요.” 그러니 처분도 마땅히 그에게 맡기는 게 맞았다. 남자가 망설이는 듯하더니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나는 그가 상자를 잡을 때를 기다려 엄지를 움직였다. 맞닿은 손이 움찔하고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남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눈을 들어 남자의 눈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두워진 풍경에 오로지 그만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재경 씨는 애인 있어요?” 나는 다시 남자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아뇨.” 그가 몇 번 입술을 들썩이더니 속삭이듯 작게 답했다. 그거면 됐다. 나는 망설임을 접고 그의 어깨를 붙들어 아래로 끌어 내렸다. 남자가 당황한 듯 비틀거리며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얼마든지 밀어낼 수도,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내게 한 걸음 다가오는 걸 택했다. 그대로 입술이 맞닿았다. 고작 얕은 접촉일 뿐인데도 짜르르한 느낌이 왔다. 입술에서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조금 거리를 벌려 남자를 보았다. 늘 맑고 고요했던 눈동자가 풍랑을 맞은 듯 물결치고 있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걸까.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좀 더 확인이 필요했다. 나는 남자의 목을 감쌌던 손을 내리고 뒤로 물러나는 척했다. “제가 키스해도 될까요?” 그러나 그보다 한층 낮아진 음성이 들려오는 게 먼저였다. 대답은 필요 없었다. 나는 이번엔 아예 온몸을 남자에게 기대듯 하며 입술을 가져갔다. 곧 입맞춤이 이어졌다. 남자는 능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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