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정오의 술래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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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 * * 이준영은 잘 숨을 줄 알았다. 부모가 죽고 생이 위태로워져도 완벽히 숨어 기어코 살아남았다. 그날 전 까지는. “차지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려줬으면 하는데.” 단 한 번의 실수로 맡은 단 하나의 의뢰. 고등학생 준영 앞에 놓인 다섯 개의 도청기.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도청은 기어코 차지호가 숨긴 비밀과 맞닿게 되는데... 차지호의 비밀을 찾아낸 이준영이 망설인다. 그를 쉬이 무너뜨리지 못하는 준영의 생이 통째로 흔들린다. 나는 이미 너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이제야 좀 쳐다봐 주네?” 차지호의 손에 들린 라이터가 그의 엄지를 따라 불을 뿜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학교에서 미쳤냐고. 여기 기숙사 앞이거든.” “관심 받고 싶나 봐. 나.” 차지호는 입을 벌린다. 그가 물고 있던 담배가 힘없이 땅으로 떨어진다. “끊었어.” 차지호가 보란 듯이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가로등 옆 쓰레기통으로 뜯지 않은 담뱃갑과 라이터가 쏟아져 내렸다. “누가 담배 냄새 싫다고 해서.” 차지호답지 않았다. 뭐랄까, 이건…. 얼이 빠진 눈으로 차지호를 응시하는 준영의 손엔 여전히 도청기 상자가 들려 있었다. “뭘 그렇게 소중하게 들고 있어?” 넋 놓고 차지호의 웃는 낯을 보던 준영이 무슨 소리지? 하는 눈으로 지호를 보았다. 차지호가 손가락으로 도청기 상자를 톡, 톡 친다. 순간 준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언뜻 무선 이어폰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상자 안엔 두 개의 도청기가 들어 있다. 눈앞의 남자는 그 상자가 자신을 소리 없이 찌르는 것도 모르고 연신 미소다. 숨길 수 없는 사람에게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준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빳빳한 박스가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구겨진다. 구겨질수록 박스는 준영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살아야 해서, 살아남아야 해서. 박스 속 죄는 준영의 숙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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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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