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첫새벽

루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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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건 벽을 세우는 방법뿐이었다. 기어코 벽을 넘으려는 이는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가이드와 에스퍼는 서로 등급, 적합도, 발현일의 조건이 맞아야 각성할 수 있다.」 강인서는 AB급 임시 가이드로 살아오며 ‘나만의 에스퍼’를 기다려 왔다. 그러던 그의 앞에 나타난 SS급 에스퍼 차도혁. 인서는 폭주 직전의 상태에서도 가이딩을 거부하는 도혁을 억지로 가이딩 한다. 이후 도혁은 마음이 변했는지 다짜고짜 인서에게 제 가이드가 되라고 제안해 오고. 하지만 인서는 그와 등급도, 적합도도, 발현일도 모두 조건과 맞지 않아 각성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기에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그런데도 도혁은 오만하다는 소문과 다르게 자존심도 없는지 계속 인서를 졸졸 쫓아다닌다. 인서는 그런 도혁이 이해되지 않는데……. * * * “너, 내 가이드 해.” 분명 차도혁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내 귀로 들어왔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눈만 깜빡였다. 차도혁이 고개를 숙였다. 하얀 얼굴이 더 가까워졌다. 말 그대로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하려는 다리를 억지로 붙들어 맸다. 쓸데없는 자존심이었다. 나는 잠시 이를 악물었다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 “싫습니다.” 내가 듣기에도 칼 같은 목소리였다. 차도혁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적합도 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지 궁금했다. 나를 떠보기라도 하는 건지, 적당히 이용하다 버리고 싶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장난이라도 치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차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고갯짓을 따라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왜?” 화를 내려고 했다. 내가 차도혁의 가이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차고 넘쳤다. 이런 식으로 뜬금없이 제 가이드를 하라는 것도 충분히 무례한 짓이었다. “다들 하고 싶어 하던데.” 하지만 차도혁의 얼굴 위로 새로 떠오른 표정에 나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차도혁은 진심으로 의아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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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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