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연행기(燕行記)

KING코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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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황자로 태어나 대륙을 발아래 둘 수 있었던 아륜이지만 그에게 제위는 거추장스러운 짐에 불과했다. 숙부에게 짐을 떠맡기고 대륙 유람하기를 3년째. 한량이 체질임을 실감하던 그때, 아륜은 원자서라는 웬 탕자와 조우한다. “본래 그리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십니까?” 이웃 나라인 비진에서 온 사신단의 일원인 원자서는 쾌활하고 영민하며, 냉소적이고 도발적이었다. 타고난 오만함으로 자연스럽게 주변의 경외를 사온 아륜이건만, 원자서의 눈에는 그저 배나 한번 맞춰볼 사내에 불과한 듯한데…… “그대는 늘 이런 식인가?” “뭐가 말입니까?” “낯선 이에게 늘 이리 스스럼이 없느냐는 말이야.” “늘 낯선 놈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붙어먹고 시시덕거리느냐고요?” 혼약한 사내와 통정한 죄로 귀양을 다녀왔다고 뻔뻔히 말하는 원자서는 아륜 평생에 겪어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아륜은 원자서에게 속절없이 휘말리는 자신을 느꼈지만 벗어날 마음은 들지 않았다. 긴 연행길 끝까지 가볼 참이었다. ▶ 본문 中 “그대가 입을 열 때마다 곤란했던 적이 퍽 많아. 날 희롱하려는 게 아니었나?”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린 원자서는 짐짓 당치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희롱이라니. 당신을 상대로요? 하하, 제가 그렇게까지 간을 배밖에 내놓고 다니는 놈은 아닙니다.” 그 태연스럽고, 뻔뻔스러운 부정에 아륜은 짧게 탄식했다. 정말이지 맹랑한 이였다. “여기가 곤란하다면 밖으로 나가겠어? 좀 걸을까.” 원자서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심기가 편찮아 보이는 표정으로 찻잔을 든 그가 단번에 남은 찻물을 들이켰다. 마치 홧김에 술잔을 꺾는 듯한 기세였다. “전 밖에서 옷을 벗을 생각은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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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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