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범과의 동침

점심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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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혼례 같은 건 올리고 싶지 않아. 난……, 난 조금도 자라지 않을 거야. 조금도!’ 음인으로 발현하고도 발정향을 내지 못해 가문에서 반푼이 취급을 받는 용가의 서자 무자치. 발정향을 내게 되면 칠순을 앞둔 아전 대감과 혼례를 올릴 처지에 놓인다. 그것이 무섭고 싫었던 무자치는 매일같이 몸이 자라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첫 발정열이 오르고. 무자치는 결국 혼례를 홀리기 위해 아전 대감이 있는 대령 땅으로 떠난다. 그러나 용가와 대립 중이던 범가의 습격으로 한순간에 혼례길이 어긋나게 되는데……. *** “너. 버, 범가야?” 그 물음에 사내는 작게 움찔했다. 자백이나 다름없는 반응이었다. 무자치는 아무리 봐도 순하기만 한 눈을 최대한 매섭게 치켜떴다. 상대의 경계심이 한층 높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난 범의 핏줄이요. 하나, 공자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소.” 자신을 해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으나 그럼에도 무자치는 의혹에 찬 눈빛을 쏘아 댔다. “혹시 날 기억하지 못하시오? 두물 시장에서 여러 번 만났었는데.” “두물 시장?” “예, 마지막에는 홍루에서 만났었습니다. 유곽이요.”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졌다. “아……!” 그제야 무자치는 이자를 어디에서 만난 것인지 기억했다. 언젠가 붉은 등이 주렁주렁 매달린 곳에서 만났던 꼬마와 무척 닮아 있었다. 도자기 인형처럼 예뻤던 사내아이. 하지만 분명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었는데 지금은 고개를 뒤로 젖혀야 할 정도로 눈높이가 높아졌다. 얇은 붓으로 그린 듯 섬세했던 얼굴은 사내다운 굵은 선으로 덧칠됐고 도자기 인형처럼 아슬아슬하던 몸은 직각의 넓은 어깨와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몸으로 바뀌었다. 또한 그 역시 자신처럼 성인식을 치렀는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있었다. 정식으로 범가의 일원이 된 것이었다. 무자치 역시 어른 티가 나는 얼굴로 변하기는 했으나, 저 사내의 성장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괜스레 배가 아파 무자치는 일부러 치욕스러운 비유를 덧붙이며 물었다. “그 쥐방울만 하던 꼬마?” “쥐방울. 하하. 맞소. 난 한눈에 알아봤는데. 아예 날 잊은 건 아니구려.” 쥐방울이라는 비유가 창피하지도 않은지 사내는 그 표현이 재미있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매섭게 날린 공격이 처참하게 빗나간 기분이었다. 무자치의 입에서는 막을 틈 없이 뾰족한 말이 튀어 나갔다. “흥. 한눈에 알아보긴. 날 죽이려고 했으면서…….” 그 말에 사내는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눈웃음을 살살 치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범가의 흑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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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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