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빅 샷(Big Shot)

FROM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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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항. 을의 주 업무는 갑의 감정적인 쓰레기통 역할이다. 을은 갑의 일상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갑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케일의 움푹 팬 눈자위가 가늘게 좁혀졌다. 다갈색의 눈동자는 유안의 빈약한 육신을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촘촘히 훑었다. 시선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거쳐 티셔츠 소매에 머물렀다. 공포에 질린 티가 역력한 데다가 손등까지 푸르뎅뎅해져선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덜 자란 것처럼 손이 조막만 했다. 그가 당장 화풀이라도 할까 봐 두려운지, 욕받이로 쓰일 게 겁나는지, 유안은 작은 토끼처럼 노골적으로 떨고 있었다. 단순한 업무 보조를 뽑으려던 의도를 몰랐을 테니 겁먹을 만도 하다. “제2항. 을은 업무 중 부상의 위험성을 충분히 숙지한다. 갑의 폭력적 행동으로 신체 피해를 입을 시 별첨에 명시한 금액을 지급한다.” 자신이 사람을 팰 거라고 넘겨짚다니. 케일은 이런 글이 계약서에 담겼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다. 그가 다가가자 유안은 비척거리며 뒷걸음쳤다. 케일이 얼마나 저질 인성의 고용주일지 두려워하는 눈빛이었다. *** 유안은 가난한 유학생이었다. 없는 살림에 바다 건너 공부하러 와서 등록금 때문에 한 학기 만에 휴학하게 됐다. 급한 돈벌이라도 하기 위해 채용 공고를 뒤지다가, 근무 조건이 극악한 일자리를 발견했다. 영 불안하지만 높은 보수에 혹해 덜컥 지원해 버렸다. 플로리다의 거대한 저택, 블라인드가 쳐진 어둑한 서재에서 유안은 그를 만났다. 빛이 닿으면 먼지로 산화하기라도 할 것처럼 어둠으로 파고들던 그 남자, 케일은 첫 대면과 함께 괴팍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귀한 돌이지만 아직 보석이 되지 못하던 남자. 밝음을 거부하는 굴속에서, 그녀는 산산이 갈려 나가고 있는 보석 쓰레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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