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사랑의 달빛부적

심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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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은미호는 여우누이지만 스물을 먹도록 여직 사내는커녕 소 한 마리 못 해치운 열등생이라 골치라지. 그런 내가 사랑에 빠졌어. 그건 누구? 이름은 은, 호. 언제나 말썽인 도령이지. 어떻게? 인심이 후하여 홀라당 창기에게 돈을 진상하고, 아비에게 의절되다시피 하였지. 엮이면 재수 없어지기로 유명한 이 은호를 어째야 할까? * * * “아버님께선 관직에 올라 청요직을 두루 거친 후에 판서(判書)가 되라고 하지. 판서라니……. 밤새 기방에서 노느라 과장(科場) 근처에도 가질 않는 날 두고 그러시지. 그래서 나는 입신출세를 위한 공부를 하기 싫다며 과장에 가지 않겠다고 ‘위기지학(爲己之學)’ 따위를 운운했지. 멍석에 말려 패대기를 당하였다. 이 달 밝은 대보름날에…….” 그리 말하는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아파 보였어. 그래서 주문을 걸어 주었지. 그러자 그의 눈이 별처럼 반짝여. “그것이 아무리 아프더라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성장해요. 하늘은 그런 존재를 사랑한대요.” “고운 네 말은 용기를 주는구나. 마치 주문처럼. 한데 그것은 어찌 꺼내느냐?” 여우 구슬이야. “달빛을 약속드리옵니다.” 그에게 구슬의 신기한 힘을 빌려주고 싶어. 내 힘을 그를 위해 쓰고 싶어. 내가 그의 달빛이, 부적이 되어 주는 거지. “언제까지?” “평생.” “참말이더냐?” “예. 약속하나이다. 달빛은 도련님처럼 고운 눈빛을 가진 사람의 것이에요. 부디 믿으세요.” “믿으마.” “그럼, 가셔요.” “어디로?” “달빛과 꽃빛의 사람에게로.” “그곳은 어디?” “여기.” 그리 말하며 은호의 두 손을 꼭 쥐었어. 약간은 당황한 듯 조금 크게 벌어진 그 눈이 너무 좋아서 그만 나도 반히 바라보았지. “네 그리 고우면서 어찌 그리 성큼 다가오느냐?” “…….” 그런 질문을 하다니, 그는 바보야. 미려의 말대로 본디 오늘같이 달이 밝은 날이 가연을 맺기에 제격이지. 달빛에 장밋빛 물이 들고, 꽃의 향기는 짙어지기 때문이지. 달빛이 너무 밝게 내리비춰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날은 꼭 구슬에 붉은 꽃물을 들이고 싶었어. 그래선지 자꾸만 얼굴이 그의 쪽으로 가까워지네. 이런, 어쩌지? 어느새 코앞까지 성큼 가까워졌어. 그의 보드라운 콧김, 입김이 살갗에 닿을 지경이야. 아니, 여우로 태어난 이상, 일이 이 지경으로 진행되었으면 간, 쓸개는 몰라도 무라도 뽑아야 하는 게 아니야? 아이코, 이 도령이 누구이지? 언제나 말썽인 은, 호. 이미 이 은미호보다 먼저 손을 움직이고 있네. 이미 두 손이 뺨을 감싸고 있네. 이쯤 되니 별수 없지. 살포시 두 눈을 내리깔며 살며시 턱을 내미노라니 보드라운 입술이 스쳐. 내리쏟아지는 달빛이 은호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어. 보름달처럼 크고 또렷한 눈동자도, 촉촉해 보이는 입술도 떨리고 있었어.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는 은호의 얼굴을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는 사이, 몸이 겹쳐지고 어느새 그가 내 위에 있어. 귓가에 와 닿는 더운 입김에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애가 타. 그대로 입을 맞춰. 우리 두 사람의 달뜬 숨소리로 전에 없이 달아올랐어.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내 구슬에 무슨 색 구슬이 더해지려나? 기대돼. 어쩌면 어엿한 상여우로 인정받을지도 몰라. * * * 땀범벅이 되어 정신없이 서로를 부르던 그때, 이상하게도 눈시울이 시큰해지고 별똥별 같은 눈물이 쏟아지며 장밋빛 구슬이 되어. 크기나 빛깔은 각각 다르더라도 여우 구슬이 만들어질 때엔 별이 흐르고, 달빛이 쏟아지며 우리 여우의 가슴속에 음악이 흐른다는 것은 같나 봐. 가슴이 무어라 할 수 없을 만큼 뭉클했어. “달빛부적이어요.” 장밋빛 여우 꽃을 그에게 바쳤어. * * * 달빛은 독자 여러분처럼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의 것입니다. 부디 믿으세요. 여러분에게도 아름다운 달빛부적이 생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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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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