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짝사랑의 종말

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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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반짝이는 녹색 잎,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여름 방학의 교정. 햇볕 아래, 얼음이 반쯤 녹아 물이 뚝뚝 흐르는 생수병을 내밀며 웃던 정한. 선명한 기억 속의 정한을 떠올린 선우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그때를 추억하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를 향해 웃어 주던 그 남자는 이제 없으니까. “왜 왔어?” “오빠도 알잖아요.” 이유를 빤히 알면서 물어 오는 남자에게 새침한 목소리로 대꾸한 선우는 여전히 앞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느리게 손을 움직이는 모습에 무어라 불평을 꺼내고 싶었지만 먼저 사랑에 빠진 선우는 언제나 약자였다. “삼촌.” “아, 네네.” 대충 대답하고 남자가 앉아 있는 의자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편하게 걸터앉은 다리를 두 손으로 좀 더 넓게 벌려 냈다. 인상은 쓰고 있었지만 힘을 주어 거부하지 않는 남자의 다리는 쉽게 공간을 내어 줬다. “이러고 있는데 계속 삼촌 소리 듣고 싶어요? 정한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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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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