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시나브로 봄봄

마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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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_남자한테만_따뜻한_본부장님 #수는_무술유단자여야지_제맛이라지 #야매기업암투 #뜻밖의_먹방 #봄날의_데이트 세한기획 기획3팀 대리 정해원은 사방에서 들어오는 스트레스로 사표를 던진다. 시원하게 사표를 낸 후 그는 즐겁게 놀고먹기 위한 리스트를 작성하며 퇴사를 준비하는데, 어째서인지 퇴사하기가 쉽지 않다. *** “아, 이런.” “왜요. 정 대리님?”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빠끔 들어 올린 김 주임의 얼굴이 환했다. 월요일에 회의가 없는 게 이렇게나 세상에 이로운 것이었다. 그러니 월요일에 일정 잡으면서 주말에 푹 쉬라는 인사치레는 제발 이제 그만, 광고주님들. 상사님들. “수첩을 어디다 떨어뜨린 모양이라서.” “아, 아이디어 수첩이요?” 정해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선주가 옅게 웃었다. 새해가 되면 회사에서 나눠 주는 노트를 한 권 끝장내는 데 한 달이나 걸릴까. 정해원은 별 특색도 없는 노트에 이 생각, 저 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낙서했다. 노트 하나를 털어 내면 또다시 회사 로고가 박힌 노트를 까서 이 생각, 저 생각을 끄적거렸다. 그러다 살아남는 아이디어는 작은 수첩에 옮겨 두었다. 그것이 오늘 한 과장과 점심을 먹다 꺼내 들었던 수첩이었다. 정해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사표를 날릴 땐 날리더라도 할 일은 해 놓자, 이런 성실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수첩 안에 꽂아 둔 만년필은 마음에 걸렸다. 신경이 쓰였다. 그 만년필이 무슨 만년필이냐. 정해원이 세한기획에 입사한 이후 바꾼 펜만 해도 수백 개. 이 펜으로 아이디어를 짜 보고, 저 펜으로 아이디어를 짜 보며, 일이 안 풀리면 이 모든 게 펜 때문이려니 하며 정해원은 문구점으로 내달렸다. 펜과의 교감을 시도했다. 이 펜이 아이디어를 쭉쭉 짜내는 펜이냐? 아님 이 펜이 아이디어 쭉쭉 짜내는 펜이냐? 육감을 동원해 필 받으면 필 받는 족족 펜을 사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지른 펜들이 죄 아이디어 탈락이라는 고배를 날렸을 때, 찬란한 후광을 뿌리며 홀연히 나타난 것이 바로 그 만년필이었다. 그냥 홀연히 나타난 건 아니었고 회사 체육대회에서 받은 상품이었는데, 이게 뭐랄까. 신묘한 힘이 작용해 쓰면 쓰는 대로, 휘갈기면 휘갈기는 대로 아이디어가 샘솟는 건 아니었지만 그 만년필로 쓴 첫 아이디어가 한 번에 통과했다. 광고주가 기획안을 보자마자 단번에 ‘오, 이거 좋네요!’라고 했다 이거다. 물론 그 이후로 수정 지옥이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항상 톡, 꺾이기에 바쁘고 두드려 맞기에 바쁜 자신의 기를 단 한 번에 살려 준 고마운 만년필이었다. 그 이후로 정해원은 그 만년필을 끼고 살았다. 제9회 세한기획체육대회 MVP, 진지한 굴림체 금박이 박힌 만년필이었다. ‘그런 만년필을 손에서 놓친 줄도 몰랐다니.’ ……사표를 낸다는 게 이렇게 긴장이 풀어지는 일이었구나. 정해원은 마우스를 움직이며 인터넷을 떠돌았다. 만년필을 잃어버렸으니 새로운 펜을 찾아 나선 건 아니었고, 머리를 식히는 중이었다. 수첩과 만년필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초조해할 이유는 없었다. 손이 떨릴 일도 없었다. 정말 없었다. 이렇게 검색창에 아아아아만 쳐도 시간만 잘 갔다. 너무 즐거웠다. 이제까지 이런 즐거움을 몰랐던 게 억울할 지경이었다. 정해원은 인터넷 검색 창에 아무 말이나 쓰고 지웠다. 자꾸만 달달 떨리려는 다리를 막으며 월급 도둑 짓을 했다. 그래, 안 찾을 거야. 절대 안 찾을 거야. 회사와 안녕하기로 한 마당이인데 수첩이고 만년필이고 잃어버리면 어때서? 찾아 나설 이유가 없었다. 이건 더 이상 회사 일로 기를 빨리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였다. 그래서 지갑은 놓고 출근해도 만년필을 꼭 챙겨 들었던 제 정신머리의 나사가 뽁 빠진 거였다. 그래, 그런 거였다. 그러니 절대로 만년필을 찾으러 안 나선다, 이거다. 정해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우스를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성큼성큼 나섰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는 발길을 막으며 정해원은 휴게실로 들어섰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어수선한 마음을 달랬다. 오늘 저녁에는 뭘 먹을까? 집에 오징어가 있으니까 볶음을 해서……허으으, 제기랄. 수첩과 만년필을 놔두고 온 곳이 하필이면 커피숍이었다. 휴게실에 서서 커피를 들이켜자니 조금씩 기억이 살아났다. 과장님과 점심을 먹고 들른 커피숍에서 수첩을 두고 몸만 쏘옥 빠져나왔다는 건데…… 거기까지 확실히 기억을 되짚은 정해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수첩과 만년필을 잃어버렸다는 핑계로 월급 루팡 짓을 하려고 했는데, 항상 쪼이고 쫓기던 입장이라 그런가. 의자에 앉아 다리만 달달 떨고 있는 것도 영 못 할 짓이었다. 그러니 과장님, 빨리 사표를 수리해 주십시오. 회사 근처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선 정해원은 매의 눈으로 자리를 훑었다. 아까 과장님과 함께 앉았던 자리에 사람은 없었다. 수첩과 만년필도 없었다. 정해원은 비어 있는 카운터 테이블을 똑, 똑 노크했다. “저, 사장님.” “네, 잠시만요.” 안쪽에서 과일을 정리하던 주인장이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 젖은 손을 수건에 닦으며 카운터에 선 주인장의 얼굴에 웃음기가 스며 있었다. 단골 가게라 안면이 있는 주인장이긴 했는데, ……이런 미소는 또 처음인데. 왠지 모를 서늘함이 뒷골을 타고 올라 정해원은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혹시 여기에 수첩과 만년필을 놔두고 간 거 없었습니까?” “아, 있었죠. 잠시만요.” 하고 대답한 주인장이 포스트잇 한 장을 건네주었다. 정해원의 눈가가 스윽, 가늘어졌다. 가만있어 봐, 내가 놓고 간 건 수첩과 만년필인데 왜 돌아오는 건 가볍디가벼운 포스트잇 한 장일까. 의문스러움에 잠시 멍을 때리던 정해원은 여기요, 하는 주인장의 말에 포스트잇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동공 지진으로 세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수첩과 만년필 놓고 가신 세한기획 직원분, 캠페인1본부 본부장실로 오세요. 노란 포스트잇에는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다. “본부장실?”

BEST 감상평 TOP1

2+

내*

BEST 1너무재미있는거~~스토리진행이빨라서좋으네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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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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