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끝에서 시작하다

이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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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갑니다.」 효원은 12년을 사귀다 헤어진 연인, 재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두의 우려를 등지고 부산행 완행열차를 탄다. 한적한 열차 안. 승객은 저뿐인가 싶어 머쓱함도 잠시. 맨 앞줄, 어슴푸레한 새벽빛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헤어지기 위한 104가지 방법> 효원은 무심코 하얀 표지 위에 큼지막하게 적힌 글자를 읽는다. 남자는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효원을 돌아본다. 각자의 이별을 가슴에 품은 채 남자와 효원은 종점인 부산으로 향한다.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을까. -……왜 전화했어? “……볼 수 있어?” -……왜? “그냥.” -휴대폰은 안 꺼질 것 같아? “한…… 43% 정도 충전했어.” 여전히 내 휴대폰은 좌석 아래 콘센트와 충전기 선으로 연결된 상태였다. -그럼, 내가 문자로 주소 보낼게. 호텔로 와. 우민이 부산에서 1박을 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연락하고도, ‘호텔’이라는 말에서 미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뭐 필요한 거 있어?” -올 때 술이랑 안주 좀 사 와. “응, 알았어. 저…… 뭐, 특별히 좋아하는 거 있어?” -가리는 거 없어. 적당히 사 오면 돼. “응.” 나는 통화를 끝내고 일인용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완전히 충전을 다 하고 나갈 생각이었다. 물론 호텔에서도 휴대폰 충전은 가능하겠지만,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 이상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 만난 지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은 우민에게 전화를 건 것은 분명 우발적인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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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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