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비연(悲緣)

이서윤

0

비연 (悲緣), 서러운 인연. 그리고 엇갈린 인연. 열사(熱沙)의 땅, 그리고 뜨거운 태양. 불처럼, 열기처럼 녹아들었다. 이렇게 다시 오라고 널 놓은 게 아니었어! 네가, 네 눈빛이 궁금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저 맥없이 궁금했다면, 너 놓아주지 않았어. 힘을 써서라도 원하는 순간, 너를 안았겠지. 너무 날 유혹해서 끌어 들이지 마. 네 눈빛, 나한테는 독이다. 그럴 때마다 널 산산조각 내고 싶거든. 연오…… 어쩌면 나는 저 남자의 자비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조금은 그때, 저 남자가 그의 객실에서 보여주었던 그런 호의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리석은 마음이 어쩌면 타인에게 처음 느꼈던 그 따뜻함을 다시 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런 관계임에도 오히려 마음을 놓았던 것은 아닐까. 피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유태훈이라 조금은 다행이라고. 태훈…… 네가, 네 눈빛이 궁금했었지.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저 맥없이 궁금했다면, 그날 힘을 써서라도 너를 안았겠지. 놓아주지 않고. “차연오?” 태훈의 입술이 나지막이 연오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내 입가에 비웃음이 서렸다. 가까이 다가온 순간부터 그의 심장을 울리게 만든 투명한 눈동자의 떨림을 무시했다. 보드랍고 포근한 이 여자의 느낌, 거칠고 뜨거워지려는 자신의 호흡도 지금 이 순간만은 철저히 외면했다. 날개를 뚝 꺾어 곁에 둘 수 있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여자,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손대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는 알 수 없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다만, 지금 격렬히 치솟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분노. 이렇게 다시 오라고 널 놓은 게 아니었어! 네가, 네 눈빛이 궁금한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저 맥없이 궁금했다면, 너 놓아주지 않았어. 힘을 써서라도 원하는 순간, 너를 안았겠지. “잊고 있었군. 네게는 네게 맞는 대우를 해줘야 했던 것을 말이다. 이렇게 뒤통수칠 줄 몰랐으니 나도 어쩔 수 없었나?” 태훈은 창백해진 연오의 얼굴을 싸늘히 노려봤다. 몇 번을 망설였었다. 그럼에도 우는 여자를 안지 못한 것은 그가 본 이 여자의 순수, 그리고 순결함 때문이었다. 결코 자신 같은 놈이 범접할 수 없다는 그런 두려움이 태훈을 몇 번이나 망설이게 하고, 결국은 포기하게 만들었다. 심장을 들끓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날 거였다고? 너 또한 그렇고 그런 여자일 뿐이지. 나는 네게 무얼 바란 거냐. 유태훈, 너는 이 여자를 시험하고 있었던 거냐? 도대체 이 여자에게 바란 게 뭐야! 태훈의 입가에 스민 고소가 짙어졌다. 어제까지는 이 여자가 충분히 자신과 감정의 교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것은 스스로의 착각에 불과했다. “네가 뭘 하러 왔는데? 이렇게 배짱이 대단한 줄은 몰랐다. 무얼 하러 왔을까? 이런 거?” 천천히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피해 연오가 고개를 돌리려 하자, 턱을 쥐었던 태훈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바르르 떨리는 그녀의 숨결을 무시하고, 그는 고개를 틀어 연오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가볍게 대었다. 흡! 가벼운 숨결과 달리 행동은 거칠었다. 온몸이 연오의 작은 몸을 짓눌렀다. 그럼에도 이미 낯설지 않은 느낌, 조금씩 연오가 호흡을 놓치기 시작했다. 서서히 태훈의 심장이 달아올랐다.

불러오는 중입니다.
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