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하루만이라도

지옥에서 온 아내

1

이동은. 그에게 여자는 최정수 뿐이었다. 13살 어린 나이에 그녀를 처음 보고 그녀에게 빠져 버렸다. 그리고 대학 4년 동안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로 발전했다. 둘은 행복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법고시 2차 시험을 앞두고 그녀가 떠나 버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새벽기차를 타고. 10년 동안 그녀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그녀와의 추억이 깃든 곳에서 그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어디에 있든 상관이 없었다. 언젠가 돌아올 그녀를 위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그녀가 돌아와 자신에게 하루를 같이 해 달라고 했다. 하루가 아닌 평생 그녀를 놓아 주지 않기 위해 그녀가 내민 손을 그는 잡을 수밖에 없었다. 최정수. 그녀에게는 아픈 사랑이 있었다. 12살 어린 나이에 그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 그녀의 모든 것을 다 주었다. 그런데 그와 그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가 모시는 사장 아들이었기에 그의 어머니에게 빛도 보지 못한 배속의 아이를 내 주어야 했다. 그래서 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0년 동안 잊지 못했던 그를 뇌종양을 제거하는 동시에 기억할 수 없게 된다는 주치의 말에 그와 마지막 하루를 보내려 추억의 장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267-1번지. 나와 그가 대학 4학년 마지막을 같이 살았던 낡은 집을 지나 다음, 그리고 그다음이 269번지. 작고 아담한 가게가 있던 건물이 헐리고 그곳에는 그리 크지 않지만 3층짜리 예쁜 집이 곱게 서 있었다. 아담한 높이의 담장과 하얀 대문, 한 면이 전부 유리인 그 집은 햇빛이 잘 들것 같았다. 작은 마당에는 잔디가 푸르고, 한쪽 구석에 청포가 심어진 작은 연못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내가 그와 꿈꾸던 집 그대로인 그곳에는 작은 문패가 덩그러니 달려 있었다. 문패에 새겨진 이름 이동은. 그가 이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딩동. 딩동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10년이나 지나서 돌아온 내게는 그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5시 반에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나의 하루는 벌써 3시간이나 지나 8시 반이 넘어서고 있었다. “누구세요?” 하얀 민소매 티셔츠에 검정색 면 파자마를 입은 그가 왈칵 현관을 열고 나왔다. 5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마주하고 선 그와 나는 10년 전 4월 30일에 헤어진 이후, 정확히 10년 1개월 11일 만에 다시 만났지만 마치 100년의 세월이 흐른 것처럼 어색하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긴 생머리의 나는 짧은 단발머리에 컷이 들어가 청초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당당하고 무덤덤한 여자가 되어 있었고, 짧고 단정한 머리에 순수하던 그는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뿔테 안경을 쓴 감정조차 없어 보이는 건조가 남자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이야. 선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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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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