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그댈, 그리고

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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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별채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악마가 살걸?” 집안 둘째 아들의 부재를 메우기 위한 존재로 열두 살에 입양되어 ‘둘째 아들’이 된 희원은 ‘류해수’였던 과거를 버리고 ‘한희원’이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앞만 보고 달리는 희원의 목표는 아버지와 형 재원의 옆자리에 부끄럽지 않게 나란히 서는 것. 늘 1등을 놓치지 않는 자신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것만이 자신에게 행복을 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별채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는 말에 이제껏 관심을 둬본 적 없던 별채에 사는 악마에 대해 처음으로 희원은 호기심을 느낀다. 하지만 악마의 정체는 ‘진짜 둘째 아들’ 한주원이었고, 그때서야 희원은 자신이 누군가의 대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는다. 세상의 눈에서 숨어 별채에 살며 춘화 작가로 활동 중인 주원은 희원이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한다. “저긴 안 돼.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마. 악마와 만나지도 마.” 별채를 오가는 외부인들과 주원의 관계가 궁금해져 별채를 서성이던 희원은 그에게 붙들리고 마는데……. * * * 보고 말았다. 희원은 그의 눈동자를 보고 말았다. 몸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막히고 얼굴이 확 달아올라 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방이 덥다고 탓하고 싶었고 식은땀이 나는 손마저도 탓하고 싶었다. 마른침을 삼키는 일조차도 주원에게 들킬까 희원은 노심초사했다. 시선은 따라다니기만 했다. 주원의 손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말을 꺼낸 것도 아니었다. 희원 스스로 주원을 의식하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신경 썼다. 주원은 희원의 반응에 나직하게 숨을 내뱉었다. 목덜미를 스치는 숨결에 희원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달빛에 비친 희원의 옆얼굴은 새빨갛게 변해 귀까지 녹여 버릴 기세였다.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사실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희원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았다. 그런 것쯤은 희원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반응한 건 자신이었다. 희원은 주원을 곁눈질하더니 재빨리 시선을 돌려 반대쪽을 쳐다봤다. 주원의 입술에 닿은 귀로 퍼지는 옅은 웃음소리가 간지러웠다. 반응하고 싶지 않은 이성과는 반대로 희원의 몸은 솔직했고 반응은 적나라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손이라도 먼저 내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희원은 턱을 작게 저으면서 마음을 다잡으려 애써 보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주원의 눈동자가 희원을 관찰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행동들을 보며 주원은 나지막이 말했다. “원한다고 말해. 한 마디만 하면 돼. 한 마디만. 널 탓할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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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치도록 아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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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상화 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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