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천옥

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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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은 백바지에 백구두를 안 신습니다.” 유일한 혈육인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윤은 자신을 옥죄고 괴롭히는 새아버지를 피해 도망친다. 도피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여생을 보내고 싶어 했던 탄광촌. 윤은 가출 첫날부터 소매치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되고, 이를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도원이 도와준다. 그는 광부로, 다소 무뚝뚝하지만 윤이 편히 머물다 갈 수 있게 배려해 준다. 윤은 도원의 집에서 짧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지만, 어느 아침 말도 없이 탄광촌을 떠난다. 몇 달 후, 윤은 낙하산으로 도원이 일하는 광업소 본사 부본부장이 되어 돌아온다. 윤은 낯선 마을에서 유일하게 아는 얼굴인 도원이 반갑기만 하지만 도원은 이전과는 달리 찬바람만 불고. 적응할 수 없는 분위기와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방인인 윤의 일상은 점점 고달파지는데……. * * * * * “솔직히 널 기다리진 않았어.” “…….” “근데, 그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도원은 잠시 뜸을 들였다. “다시 만날 줄 알았거든.” 윤을 부드럽게 응시하는 눈동자에서 거짓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도원은 윤의 가슴을 마구 흔들어 놓는 말을 마치 으레 하는 인사처럼 여상하고도 담백하게 뱉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지난밤도 나는 당신 생각에 잠 못 이루었어요. 나날이 커지는 마음을 전할 길 없어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낫겠다 싶어 밤새도록 죽을 방법을 궁리했어요. 옥상에서 뛰어내려야 하나 대들보에 목이라도 매야 하나 그러다가 당신 목소리가 들려 나와 봤답니다. 그런데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나가실 때 우산을 챙기세요. 비가 온다고 하니까요. 당신을 기다리지 않았어요. 다시 만날 줄 알았으니까요. 역시나 눈가가 축축해졌다. 하지만 이건 슬퍼서 우는 게 아니다. “형,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본 거야.” “조금 그랬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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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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