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한 배를 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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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미친 악녀 연기는 이제 끝났다. 대금만 받으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자유를 찾아 떠나려던 레이시의 계획은 완벽했다. <현상금-천만 골드. 생사 불문> 그러나 레이시의 손에 쥐어진 것은 수표가 아닌, 그녀의 얼굴이 떡하니 박힌 수배 전단지였다. 의뢰주가 세게 때리고 간 뒤통수에 얼얼함을 느낄 새도 없이 서둘러 이 나라를 떠야만 했던 레이시는 빗속을 틈타 낯선 배에 몰래 숨어들게 되고. “밤손님으로 찾아온 건가, 아니면 도피를 위한 밀항인가?” 악녀 시절 줄곧 앙숙이었던 이국의 황태자, 할리드와 마주치는데……. “희대의 악녀를 해내었으니, 세기의 신부도 가능할 테지?” “……네?” “내가 바라는 역할은 간단해.” 창가에 기대선 그가 싱긋 미소 지었다. “내가 한눈에 반해 이국에서부터 데려온 정비.” 누구요? 뭘 하라고? 딱 그런 눈으로 얼어붙은 레이시를 향해 그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연기를 기대하지.” 악녀의 가면 대신, 희디흰 면사포를 쓸 시간이었다. *** “잊지 마세요. 이제 우린 한 배를 탄 사이란 걸.” “한 배를 탄 사이…… 라. 그건 그 배에 타고 나서 말해야지.” “……지금 타고 있잖아요?” 그녀를 올려다보며 그가 입술을 느릿하게 핥았다. “그 배 말고 다른 배.” “…….”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아, 레이시는 뒤늦게 깨닫고 탄식했다. 그의 욕망을 이용해 먹을 수 있겠다고 좋아만 하긴 일렀다. “이리 올라와 봐, 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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