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너라는 심해에 잠겨

하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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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요?” 무릎에 쪽, 쪽 소리가 낯간지럽게 울려 퍼졌다. 심해경의 눈빛이 집요하게 활짝 젖혀진 다리 사이를 관찰했다. “내 이름 바다 해자를 쓰거든요. 바다 해, 밝을 경. 아버지가 직접 지으셨어요.” 예쁜 이름이라 그녀와 무척 잘 어울린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이 몽롱한 정신을 차갑게 일깨웠다. “이름에 바다 해 자가 들어가면 물기운이 서려서 인생이 박복해진대요.” “…….” “어머니가 임신하셨을 때, 그렇게 말해 주셨다네요. 파도처럼 굴곡 심한 인생을 살라고.” 그렇게 살다가 얌전히 죽어 버리라고. 담담히 읊조리는 말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해경…….” “새언니, 여기서 물 냄새가 나네요.” 흥건하게 젖은 손바닥이 엉덩이를 꽉 붙잡아 끌어당겼다. “아, 나는 물 냄새가 좋더라.” 술에 취한 건 그녀였는데, 의식이 어지러운 건 내 쪽이었다. 미리보기 “새언니 되실 분이라고 들었는데 인사가 늦었네요. 심해경이라고 합니다. 심재호 씨 동생이에요.” 그래, 저 여자가 바로 심해경이었다. 여태 베일에 싸여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물밑에서만 조용히 움직이던 사람. 그리하여 내 남편에게 가장 미운털이 박힌 여자. “안녕하세요, 아가씨.” 오뚝한 콧대와 반듯한 입술, 반달 모양으로 길게 휘어지는 눈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도 맑고 깨끗한 눈이 정말 아름다웠다. 심해경의 눈에는 바다가 있었다. 푸르다 못해 짙은 먹색으로 일렁이는 심해(深海)가. “앞으로 자주 봐요, 구도희 씨.” 코끝에 남은 그녀의 향기가 결혼식 내내 아른거렸다. 심재호가 아니라, 그녀가 내 곁에서 함께 서 있는 상상을 했다.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까? 결혼식 자리에서 첫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 나도, 그 상대도 여자일 수 있다는 걸. 그 여자가 내 남편의 여동생일 수도 있다는 걸. 그 모든 게…… 같은 날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지옥의 입구에 도착했음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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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주가 미모를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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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악마들과 얽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