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더 딥(The Deep)

이리

58

날 사랑하지 마. 나는 벌레야. 도희야, 나비도 벌레야. 청량감이 느껴지도록 시원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깊은 눈매의 남자는 이제 깊은 밤처럼 어둡기만 했다. 올바르지 않은 아버지를 막고자 했던 청년은 이제 거침없이 흙탕물 속에 몸을 담그는 사내가 되어 있었다. 기어이 끌어내려 똑같이 진창에 구르게 만들고 싶었어. 난 정말 벌 받을 거야. 채도희. 그것은 쓴웃음을 짓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역겨운 육욕이었다. 겉으로는 점잖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를 미치도록 열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소녀가 그의 몸 위에 앉아 있었다. 내가 너를 다치게 할 거야. 네가 처음 우리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널 보면 음탕한 생각을 떠올렸어. 문성록. 그는 긴 손가락으로 도희의 턱을 치켜 올리고 삼킬 듯 내려다보았다. 다가오는 그의 존재감이 너무 압도적이라 그녀는 순간 숨을 멈추었다. 조용하고 어두운 공간 속에 흐릿한 긴장이 감돌았다. “네 눈빛 목소리, 그리고 네 온 몸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왜 나는 너를 믿을 수가 없지?” 그는 두께를 가늠해 보듯 그녀의 목을 감싸 쥐었다. “내 마음을 당신이 그렇게 잘 알아요?” “아니야?” 가볍게 감싸 쥐었다고 해도 커다란 손안에 잡힌 느낌은 끔찍했다. 그가 조금만 힘을 주면 여지없이 부러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말 그렇게 한다고 해도 반항할 생각은 없었다. “네 사랑의 값어치를 모르겠어.” 그녀의 뺨에 그의 숨결이 닿았다. 이렇게 몸이 떨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기대감 때문일까. “내가 어떻게 해도 믿지 않을 거잖아요.” 그녀는 붉어진 눈을 한 채, 중얼거렸다. “노력해봐.” 철컥, 그가 선 채로 허리띠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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