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검은 실

신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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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생(生)의 끝자락에서 마주치는 게 저승사자라면 귀신이 죽음의 끝자락에서 마주치는 건 퇴귀사(退鬼士)일 것이다. * “걱정 마라. 아홉수가 되었을 때 돌려주마.” 운명대로라면 유서 깊은 퇴귀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을 백은조. 하지만 그는 태어난 순간 누군가에게 납치당했고, 아이는 오랜 시간 낯선 곳에서 지난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후 아이는 기적처럼 생지옥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가족에게조차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간다. 자신에게 따라붙은,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로. 그러던 어느 날. “와, 진짜였네.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그의 앞에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류서진이 나타난다. 7년 만이니만큼 그의 마지막 기억보다 훌쩍 컸지만, 마지막 기억에서처럼 부드러운 웃음을 띤 말간 얼굴로. 자신과 가까이 지낸들 좋을 게 없었다. 하여 백은조는 밀어냈으나, 서진은 자석처럼 그에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재회한 순간부터 그들은 어떤 운명에 휩쓸리게 됐던 걸까. “거기 있던 누석의 혼이 네 몸에 들어갔던 건가?” “그렇다면 그게 문제가 돼?” “만약 그런 거라면 눈 뜨고 두 번은 지켜볼 생각이 없거든.” 두 사람의 목에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한 사람이 죽어야만 끊어지는 악연의 실이 걸려 있었다. 사실 서진은 유전병으로 단명할 처지에 놓여 있었고, 앞으로 살날이 5년이 채 남지 않은 서진에게 백은조가 제안했다. 저와 연리지(連理枝)를 맺자고.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그래. 내 수명 절반 떼서 너한테 주겠다고.” 두 사람은 검은 실을 끊기 위해, 운명을 거스르기 시작하는데……. * [본문 중] “연리지.” ……뭐? 서진이 제가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하는 눈길로 백은조를 쳐다봤다. 그러나 환청이 아니었다는 듯이 백은조의 입에서 그 단어가 다시금 또렷이 전해져 왔다. “알다시피 연리지를 맺는 두 나무는 서로 뿌리가 얽혀서 물과 양분을 공유해. 서로를 지지하고 보호하기 때문에 생존 확률도 올라가는 거고.” 마침내 종이를 접던 백은조의 손동작이 멎었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잖아. 두 사람의 혼이 연리지를 맺으면 상대의 수명을 공유하게 되니까, 양측이 오래 살 수 있도록 서로를 지키려 들지.” 서진이 막막해진 심정으로 백은조를 바라봤다. 다 맞는 말이지만 그 말에는 모순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연리지가 이점이 되는 건 두 사람이 동등할 때의 이야기였다. 서진은 제가 병충해가 들어 언제 죽을지 모른 채 썩어 가는 나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런 나무와 연리지를 맺으면 다른 한쪽은 영양분을 상당수 빼앗긴 채 평생 고생만 하게 되리라. 서진이 목구멍에 걸린 말을 간신히 쏟아 냈다. “그거야 그렇지만…… 누가 날 위해 연리지를 맺겠어. 그랬다가는 수명 반절을 뺏기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왜 없다고 생각해?” 백은조가 고개를 돌리면서 일순 두 사람의 시선이 하나로 맞물렸다. “아까 물어본 것 같은데. 나랑 굵고 길게 살아 보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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