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탁정

브리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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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에는 가상의 미술 작품, 비도덕적인 인물, 선정적인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서 이용 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탁정[託情] : 정을 붙이다. 남자는 잿빛 진눈깨비와 함께 찾아왔다. 평생 이름도 모르고 살던 친부의 딸 연기를 해달라는 기묘한 제안을 하면서. 행운인지 아닌지 구분할 필요조차 없었다. 단영은 돈이 절실했으니까. 정작 마음을 뒤흔드는 건 다른 존재였다. “갓 태어난 새끼 오리알아? 알에서 나오면 처음 본 존재만 졸졸 쫓아다닌다더라. 그게 뭐든 간에.” 승조가 무심한 표정으로 핸들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너도 별다른 것 없어. 앞으로 사회생활 하면 진심으로 도와주고 챙겨줄 사람 많아.” “…….” “나 같은 사람은 비싼 술 먹고 싶을 때나 연락하는 거야.” “그럼 지금 사주세요, 술.” 미숙한 모든 오감이 확언하고 있었다. 당신은 내 까만 안락함이라고. 누더기 같은 현실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근사한. * * * “저거……다 들어가요?” “저거라니. 아저씨 자지보고 서운하게.” 승조가 단영의 허리를 잡고 지그시 내리눌렀다.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한번 확인해보면 알지.” 진짜로, 몸 안으로 아저씨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맨 살갗을 문대면서, 젖은 땀이 뒤섞이면서. 본능적으로 어떤 일상적인 행동으로도 이런 만족은 얻을 수 없으리란 직감이 뒤따라왔다. 큼직한 손이 단영의 아랫배를 더듬었다. “반 밖에 안 먹었는데도 이렇게 불룩해졌네.” 만족감이 묻어나는 승조의 낮은 목소리가 목울대를 긁으며 올라왔다. “한번 맞춰봐. 네가 술 마시고 싶은 거 참는 게 어려운지, 아니면 내가 씹하고 싶은 거 참는 게 어려운지.” 사실은 전부 가지고 싶었다. 티 하나 없는 뽀얗고 흰 살결도, 부드러운 머리칼도, 삶의 체념이 투명하게 덧입혀진 오묘한 눈망울도. 생각할수록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부드러운 육신이 다른 남자 손아귀에 범해진다니. 겨우 단영에게 손대길 멈췄던 일련의 이유가 바스러진다. 단영이 어떤 개 같은 새끼랑 붙어먹는다면 그래, 그럼 내가 그 개 같은 새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샛말갛게 빛나던 샛별 주위를 빙빙 돌며 보호해주는 척하다가 난데없이 통째로 집어 삼켜버린 탐욕스러운 블랙홀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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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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