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도시정연(都市情緣)

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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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女子, 이신우. 홍콩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지 7년. 생경한 자극 없이 지내던 어느 날 악연으로 얽힌 한 남자가 그녀의 가슴에 균열을 일으킨다. “나한테 그 어떤 감정도 갖지 마세요. 후회할 거예요.” 그 男子, 강지석. 첫사랑을 그리워하고 증오하기를 10년째. 살면서 이제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연히 만난 여자의 향기가, 그녀의 눈물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이렇게 쉽게 놓을 거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홍콩의 밤, 차갑게 얼어 있던 두 사람의 심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본문 중에서] “……죄송합니다.” “좀 괜찮은 겁니까?” 신우는 민망한 얼굴을 차마 들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입은 또 주책없이 나불거렸다. 뇌는 어느 정도 깨어났는데 혀는 여전히 알코올에 푹 잠겨 있는 모양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를 말입니까.” 본인을 지칭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가 얄밉게 묻는다. 신우는 들키지 않게 입술을 삐죽이고는 슬쩍 눈을 들어 그를 흘겨보았다. “……누구겠어요? 당연히 그쪽이죠.”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녀의 말에 지석은 피식 웃어 버렸다. “그렇군요.” “…….”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그렇다면 이신우 씨 눈엔 내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송장쯤으로 보였겠군요. 아니, 멀쩡히 걸어 다니긴 했으니 좀비로 보였으려나?” 뭐야? 저 웃기지도 않는 오싹한 말장난은? 냉혈 인간의 가슴이 따뜻한 걸로도 모자라 저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농담까지 하자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신우는 조심스럽게 그를 살펴보았다. “왜 그렇게 봅니까?” “화 안 나세요?” “화를 내야 하나?” “화 잘 내시잖아요. 성질도 좀 더럽고.” “그렇군요.” 헐, 이 남자가 뭘 잘못 먹었나? 오늘은 왜 이리 고분고분해? 순순히 인정도 잘 하고. “기분…… 안 나쁘세요?” “기분이 나빠야 합니까, 내가?” 성질이 더럽다는 소리까지 들었는데도 기분이 안 나쁘다고? 이 남자, 내가 홍콩에서 상대했던 그 냉혈한 바이어가 맞아? 신우가 놀라서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 그가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마주 쳐다보았다. 지척에서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스러웠지만 굳이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눈물에 씻긴 여자의 투명한 동공이 티 없이 맑게 개어 있었다. 조금 전 취기를 감당 못 해 주사를 부리던 여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서 가슴도 차가울 줄 알았는데, 당신 가슴이 따뜻해서 의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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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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