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 모르는 비밀

로맨스그들만 모르는 비밀

이승연

9

“급한 일이면 전화해 보지.” “아니요. 그냥 저녁 맛있게 먹으라는 문자였어요. 그런데 오늘 무슨 일 때문에 연락 주신 거예요?” 기찬은 오전까지만 해도 분명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녀를 만나니 너무 유치한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중이었다. 대놓고 ‘왜 요즘에 문자 안 보내는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건 너무 조잔해 보였다. “잘 지내나 싶어서.” “잘 지내고 있어요. 규기찬 씨도 잘 지내고 있지요?” 기찬은 꼬맹이가 ‘아저씨’도 아니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자 눈이 가늘어졌다. 맹랑하게 그녀는 그를 보며 웃기까지 했다. 그것도 뭐가 재미있는지 생글거렸다. 바로 저 웃음 때문에 그가 얼마나 심란했던가. “회사 일 만사 제치고 아저씨 보러 나왔는데 심통 나 있는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고. 기분 안 좋은 일 있나요?” “정수연 씨.” 그가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수연의 눈이 긴장으로 동그래졌다. “이름 마음대로 부르도록 해 줄 테니 우리 연애합시다.” “연애요?” 수연은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그래, 연. 애.” 기찬은 이런 쪽팔린 짓을 자신이 하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티눈처럼 신경이 쓰이더니 기어코 자신의 입에서 이 말을 뱉게 만들고 말았다. 그냥 무시하며 지내다 보면 기억에서 삭제될 텐데 통화 버튼을 누른 후 그의 이성은 잠시 마을 나간 것처럼 입에서 아무 말이나 툭툭 내뱉어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농담이라고 말해! 규기찬, 쟤 얼굴을 봐. 연애라는 말 한마디에 얼굴 벌게지는 애를 잡고 잘도 연애하겠다. 저런 불편을 네가 감수할 수 있을 거 같아? “저……좋아하세요?” 생각지도 못한 그의 폭탄 발언에 수연의 심장은 거세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문자 하나 보내지 않던 그가 갑자기 나타나서 사귀자니. 설마 서민재 뺀질이처럼 편의상 애인 급구는 아니겠지? “그냥 눈이 가. 보면 신선하고.” 내가 채소야? 신선하게? 그의 어이없는 답에 실소가 터지려고 했다. 그래도 일단 답은 해야 했다. “좋아요. 우리 연애해요.” 기찬은 잠시 수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애하자는 그녀의 표정이 참으로 비장해 보였다. 그는 그녀가 혹시 그 개망나니 때문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신과 사귀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이건 이거대로 찝찝했다. 수연은 물을 들이마시며 그를 향해 속으로 살짝 칼을 갈았다. 규기찬 씨, 다음번에 당신 입에서 야채 이야기가 아니라 나 아니면 죽는다는 말을 꼭 듣고야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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