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치명적 거래

서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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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할래, 말래?” 남자의 제안.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남자의 손을 잡아야 한다. 거래라는 말에 선택의 폭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할게요.” “서울 병원으로 옮겨. 최고의 의료진을 불러서 치료 시작해.” 조건조차 묻지 않은 거래는 위험하게 시작되었다. “네 인생을 사지. 딱 10년만.” 그리고 나중에 들은 조건은 경악할 만한 내용이었다. 10년을 이 남자에게 팔고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 가진은 체념하고 말았다. 그가 원한다면 뭐든지 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게 아무리 치명적으로 위험한 거래라 해도 거부할 수 없었다. -본문 중에서- “내가 말했지. 힌트를 줬음에도 이곳에 온 건 너의 선택이야. 도망갈 수 있었을 때 도망쳤어야지.” 힌트였나! 몰랐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그가 어떤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따위는. 다만 바라는 것은 자신의 수치심을 매개체 삼아 아버지의 목숨이 연명되길 바랄 뿐이다. 무사히, 제발! 그녀는 주문처럼 간절하게 기도하며 남은 속옷을 힘주어 끌어내렸다. 이젠 온전히 나신의 몸이 됐다. 와 닿는 시선이 눈을 감았지만 느껴졌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열감이 느껴졌고, 제발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만 조급해진다. “흠.” 아득한 현기증이 날 정도로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입에서 고작 얕은 신음이 흘러나온 것이 다였다. 제발 이것으로 끝이길……. 눈물을 가둔 눈은 힘주어 감은 탓에 깊은 주름으로 보일 지경이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군. 됐어.”바비인형의 조건을 만족시킨 건가. 됐다는 말에 잔뜩 고여 있던 긴장이 드러난 피부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치료…… 계속해주세요.” “넌, 결정한 건가?” “더 벗을 것도 없어요.” “아니. 더 있지.” 그가 말하는 것이 뭔지 모르지만 제발 결론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금방이라도 밖에서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올 것만 같다. 입술을 지려 물고, 눈을 꼭 감았지만 내밀한 가슴속에서 밀고 올라오는 오열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발…… 옷 입게…… 읍.” 묶은 머리가 사정없이 남자의 손아귀에 갇히고, 앙 다물렸던 입술 새로 뭔가가 비집고 들어온다. 애써 도리질을 쳤지만 남자의 힘에서 벗어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열어.” 대체 뭘 열란 소린가! 그녀가 질문하기 위해 눈을 뜨고 다물었던 입술을 열려는 순간, 뭔가가 입안을 깊이 파고들었다. “읍.” 안 돼! 그녀가 거칠게 항의를 하듯 그의 어깨를 손으로 내리쳤다. 꽤 힘을 실어 때렸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만 격하게 뜨거운 숨결을 그녀의 입 안에 퍼붓는다. 혀로 샅샅이 맛보고 낯설기 그지없는 그의 타액을 삼키게 만들었다. “흐윽.” 몰랐다. 옷을 벗으라고 해서 벗었을 뿐, 이런 폭력과 같은 입맞춤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그녀의 항의하는 몸짓을 따라 흔들리는 가슴이 어느 순간 그의 손안에 가둬지고 주물러진다. 입술은 완벽하게 함락되어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 혀는 목구멍 끝까지 파고들다, 제 혓바닥을 흡반처럼 빨아들인다. 다 삼키지 못한 그의 타액이 그녀의 입가를 타고 바닥으로 흘렀지만 키스는 끝나지 않았다. “윽.” 그의 손아귀에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낯선 열감, 알 수 없는 쾌감이 그녀의 척추를 강타하지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 다리 사이로 모이는 뜨거움, 그리고 그의 손에 이형처럼 일그러지는 가슴 끝에 흐르는 전류. 이건 내가 아니야. 가진은 도리질을 쳤다.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수치심뿐일 거라 생각했는데…… 다른 감각이 찾아왔다. 드디어 그의 입술이 떨어지고 그녀는 헐떡이는 숨결을 급하게 토해냈다. 그녀의 타액이 묻은 그의 입술은 붉은 빛이 진해졌다. 그리고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네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 중 이것도 포함이다. 거래는 공정해야겠지. 조건을 말했으니, 네 결정을 얘기해. 어쩔까, 치료를 멈출까, 지속할까?” 잔인해! 10년을 이러고 살아야 한다는 소리다. 결정권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니 선택을 하라는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한 선전포고였다. 그의 손은 아직 소담한 그녀의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가슴 끝이 아려왔다. 또한 다른 감각도……. 헐떡임을 내놓던 입가에서는 응축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흥정을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살릴 수 있다면 아니 못 살릴 것 같아도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수밖에. 가진은 맹목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대답해, 입으로.” “네. 네! 제발 치료 멈추지…… 말아주세요.” “좋아. 오늘부터 카운트에 들어가지.” 그의 대답에 그녀의 온 몸에서 힘이 빠졌다.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집요하게 만져대던 가슴에서 그의 손길이 떨어진다. 부푼 유두만 허공에 존재를 드러냈고 비밀의 시간을 묻듯 방은 침묵으로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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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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