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짐승은 짐승끼리

망루

4

난생처음, 거짓말을 했다. 낯선 남자에게. 그 남자와 욕망을 쏟아부은 밤까지 보내고는 인사도 없이 등을 돌렸다. 미련이나 죄책감은 없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기에, 그저, 한 번의 ‘일탈’로 가슴 깊이 묻어뒀을 뿐이었다. 그랬는데…, 계절이 다섯 번째 바뀔 무렵, 그가 나타났다. 신입 직원이란 이름으로. ---------------------------------- 침을 꼴깍 삼킨 그녀가 강준범에게 느릿느릿 시선을 옮겼다. “무슨 뜻이야? 내가 있는 걸 알고 왔다는 거야?” “딩동.” 장난치듯 대꾸한 강준범이 씨익 웃었다.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져서 은진은 커다란 눈을 끔뻑거렸다. “어떻게 알았는데?” “아, 저승사자 쳐다보는 눈으로 보지 마요. 쫄 거 없어요. 뒤를 캐거나 한 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똑바로 얘기해!” “네네. 취업박람회에 갔다가 이 회사 홍보 책자를 보게 됐어요. 거기에서 일 년 동안 내가 찾아다닌 사람 얼굴을 발견했고요.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고 있더군요. 그날 내 밑에 깔려서 울던 얼굴하고는 딴판으로 말이죠.” 비아냥거리는 말에 은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래서 이 회사에 입사원서 냈다고?” “네. 그러고 붙었죠. 뭐, 붙을 건 당연히 알았어요. 저도 스펙은 꽤 괜찮거든요.” 은진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기가 막혔다. “그래. 알아. 너, 도쿄대에서 수석이었던 거.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여길 와? 인사 안 하고 간 게, 그렇게 분했어? 그 일 가지고 협박이라도 하려는 거야?” “흠. 협박이라…. 그런 건 생각하지 못했는데, 친절히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농담하지 말고!” 버럭 소리를 지른 순간, 준범이 문을 탁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묘한 두려움이 엄습해서 은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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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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