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플레어

채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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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합심해서 효신을 농락하는 것 같았다. 나라는 망했고, 부모는 그녀를 버린 데다가, 얻어맞고 줴뜯기는 종년 팔자까지 떠올리자면 효신은 속에서 천불이 이는 듯했다. “조선 밖으로 나간다고 종년살이 벗어날 성싶으냐.” 개중 가장 큰 장작은 단연 주인집 도련님, 윤산영의 냉랭한 눈길이다. 천한 것에게 아량을 베풀듯 시선을 내리는 귀족적인 오만함. 내가 감히 너를 보아 주었다는 못마땅한 눈빛. 게다가 희고 단단한 손놀림으로 바이올린 현을 퉁퉁 튕기는 꼴은 또 어떠한가. 예민하고 차갑기 그지없는 저 바이올리니스트가 힘차게 활을 휘갈길 때면, 효신은 뱃속에서 간질거리는 화염을 기필코 모른 체해야 했다. “종년 팔자 어디 가겠습니까. 여기 꼭 붙어 있다가 이 집 귀신이나 될랍니다.” 이 풍진세상을 등지면 펄펄 끓는 화기가 좀 가라앉을까. 차라리 칵 죽어 버리면 이 서러운 불길도 잠잠해질까. 효신은 그렇게 세상에서 제가 삭제되길 소원했다. “……그러든지.” 그녀가 뿜어낸 불티 한 톨이 그에게 옮겨붙어 순식간에 활활 번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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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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