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저문 여름에 그대를 묻다

염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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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망칠 곳이 없어.” 지난날, 나를 휘청거리게 만든 사랑을 피해 도망친 서울 외곽 오르막길의 끝, 옥탑방. “그러면 비 그칠 때까지만 있다가 가도 돼요?” 그리고 그곳으로 찾아온 아름답고 어린 남자. 지난 사랑이 찾아옴으로 도피처의 의미를 잃고, 남자를 들임으로 은신처의 의미를 잃은 옥탑방에서, 오로지 남자의 탄탄한 허리만 담아내는 시야, 고개를 들면 왠지 가까워진 듯한 밤하늘, 남자가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낮게 끌리는 신발 소리와 높게 스치는 비닐봉지 소리, 후텁지근한 바람과 여름 특유의 냄새, 소담한 봉선화와 피자두의 향을 모두 이기는 남자의 체향. 내 모든 감각이 남자에게 휩쓸리던 여름날도 있었노라고. * * * “글쎄. 벤츠가 와도 내가 탈 생각 없으면 끝 아닌가. 나는 이제 별로 차 타고 싶지 않은데.” 사랑을 길바닥에 버리고 돌아선 여자와, “깊이 다 계산하고 뛰어들었는데 생각보다 수심이 깊어요, 서님이. 내가 허덕여.” 여자의 망한 궤적을 좇는 것조차 꿈이 된 남자의, 애틋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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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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