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마녀와 그레텔 [외전포함]

사슴묘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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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마력을 거의 생성할 수 없는 마녀, 카타리나. 그녀는 어느 날 태어난 지 두 달 된 마녀를 떠안게 된다. “이 귀여운 아이의 이름은 뭐니, 카타리나.” “이름?” 카타리나는 아이를 슬쩍 내려다봤다. 그녀가 눈을 마주쳐 주는 것만으로도 금빛 눈동자에 안도가 서린다. “…그레텔.” “응?” 살을 찌워 잡아먹을 거니까 그레텔.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그러나 그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나 남자란 말이에요.” “너…! 거짓말하면 잡아먹을 거야….” “거짓말 아니에요!”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마녀가 남자라니. 아니, 그럼 애초에 마녀도 아니잖아! 그녀는 과연 그레텔을 잡아먹을 수 있을까. <<맛보기>> 마녀 중에 남자가 있다고?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다. 그럼 애초에 우리를 마녀라고 부를 리가 없잖아. 혹시 부종이나 종기가 아닐까 싶어(그것도 좀 무섭지만) 언제부터 나 있었느냐고 물었으나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 대답한다. 돌연변이인가? 그런 걸 먹었다가는 탈이 날 거야! 아무래도 잡아먹기는 그른 것 같다. 그레텔이라는 이름에 뭐라도 씌었나. 왜 그레텔이라는 이름을 가진 애는 잡아먹기가 더럽게 힘든 걸까. 카타리나는 제 검은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아니, 근데 헷갈리게 왜 여자 옷을 입고 있는 거야? 카타리나는 그레텔이 벗어 놓은 원피스를 이리저리 들춰 봤다. 깨끗하지만 손목과 팔 아랫부분이 약간 해져 있다. 솔기에도 다시 박음질한 부분이 눈에 띈다. 카타리나는 크리스와 일레인에게 여자아이만 셋 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아, 이건 그 딸들이 입던 옷이구나. 그 조그맣고 폐쇄적인 마을에서 남자아이 옷을 구하고 다니면 이상한 소문이 퍼질 테니 그런 것이겠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 아이는 남자애였다는 건데, 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걸까. 설마 내가 수녀원 소속이라 여자애가 아니면 안 데려갈 것이라 생각했나? 거기까지 생각하니 기분이 확 나빠졌다. 역시 인간들은…. “카타리나….” 턱을 괴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누군가 슬그머니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빨간색의 원피스를 입은 그레텔이다. 카타리나는 평소처럼 화가 나는 대로 성질을 부리려다 불안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얘가 무슨 잘못이겠어. 인내심이 점점 늘어나는 게 느껴진다. 얻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길가의 돌멩이만큼도 신경 써 주지 않던 카타리나다. 제가 이럴 수도 있다니 저도 놀랍다.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네 탓은 아니지.” 또 울 것 같아서 품에 끌어안고 달래려는데, 역시나 코를 훌쩍인다. 짜증이 났으나 사실 그보다는 안타까운 심정이 더 컸다. 그레텔도, 자신도 불쌍했다. 이번에야말로 마녀는 그레텔 스튜를 배부르게 먹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카타리나는 그레텔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말 잘 들을게요. 여자 옷도 얌전히 입을게요…. 제발 카타리나 옆에 있게 해 주세요….” “…….” 이걸 어찌한다. 이제 너는 나한테 필요 없으니까 아무 데나 가고 싶은 데로 가 버리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됐다. 어디 기차 타고 멀리멀리 서부에 가서 놓고 올까? 아예 알래스카 같은 데 떨구고 와 버려? 하지만 그러다 근처의 마녀에게 붙잡혀 내 이름이라도 흘렸다가는…. 이단으로 몰릴 거야. 어쩌면 레이첼까지 곤란해질 수도 있어. 카타리나는 눈을 부릅떴다. “카타리나….” 그레텔이 얼굴을 치켜든다. 예쁜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 됐다. 카타리나는 여린 피부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손으로 조심조심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알았어. 같이 살자. 내가 널 돌봐 줄게.” “카타리나!” 잿빛이었던 그레텔의 얼굴에 순식간에 화색이 돈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헤헤 소리까지 내어 웃는다. 카타리나는 자기도 모르게 따라 미소를 짓다 아차 싶어 얼른 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레텔은 눈치 좋게 카타리나의 품에서 빠져나와 눈물을 쓱쓱 닦았다. “대신 아무한테도 네가 남자인 걸 들키면 안 돼.” “네!” “말도 잘 듣고.” “네!” “설거지랑 청소도 열심히 해야 한다?” “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레텔이 기특하게 느껴진다. 카타리나는 그레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똑똑한 애다. 성인이 되면 제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눈치채고 혼자 알아서 멀리멀리 떠나겠지. 그때까지는 집에 가둬 놓고 가정부로 부려 먹으면 되겠어. 카타리나는 씩 웃으며 일어섰다. “그럼 청소하는 방법부터 배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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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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