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바이 앤 하이 [단행본]

김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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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남자끼리 하는 거에 관심 있냐?' 이 한마디로 시작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지지부진하게 이어져왔던 신진기와 이이제의 인연. 그 무의미한 반복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고자 두 사람은 계약결혼을 택하지만, 거짓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고. 비슷한 시기에 두 사람이 함께 일하고 있던 라운지바의 오너가 바뀌면서, 좀처럼 파악하기 쉽지 않은 까다로운 새 오너인 이척과도 잦은 마찰이 일어나는데. 이러려고 계약결혼을 택한 게 아니었는데 싶은 씁쓸함 속에 이기적이고 무례하다고만 생각했던 이척은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이이제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이래도, 너하고 신진기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어긋나기만 하는 신진기와의 관계, 못된 놈인지 다정한 놈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불쑥 가까운 곳까지 다가와있는 이척. 그 사이에서 이이제의 바이는 무엇이 되고, 하이는 무엇이 될지? 본문 중에서... 한동안 차 안에는 두 사람이 연기를 흡입하고 뱉어내는 소리와 세상을 끝낼 듯 쏟아지는 빗소리뿐이었다. 이척이 먼저 피우고 있었지만, 담배를 끈 것은 이이제가 먼저였다. “안 할래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였다. 목적어가 빠진 질문에 이척은 이이제를 돌아봤지만, ‘뭘?’이라고 굳이 물으려 들지는 않았다. 이이제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생각을 하고 뱉은 말은 아니었지만, 뱉고 보니 자신이 그것을 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젠, 호기심 없어졌어요?” 이척은 핸들 위에 가볍게 손을 걸치고 있었고, 그 손에 들린 담배에서 희고 가는 연기가 느릿느릿 피어올랐다. 그는 담배를 들이마시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저 혼자 타들어간 담배가 제법 긴 재를 만들어낼 때까지 그는 침묵한 채 이이제를 보고만 있었다. “자포자기입니까?” “자포자기해서 남자에게 안기려고 하는 감상적인 기분은 아니지만, 지금 이 감정을 설명하기엔 말주변도 없고 너무 지치기도 했으니, 자포자기한 걸로 하죠.” 며칠 전 그 밤에 자기가 했던 말을 흉내 내는 이이제의 대답에 이척은 소리 없이 짧게 웃었다. 그리고 담배를 껐다. “그럼 나도 아직 호기심 때문인 걸로 하죠.” “단… 부탁이 하나 있는데.” “…….” 그는 이번엔 눈으로 묻고 있었다. 이이제는 대답했다. “내 의사 같은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줄 수 있어요?” “그게 부탁입니까?” 그렇게 묻는 이척의 눈은 서늘했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경멸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저 속에서 이이제가 확인하고 나온 어둠보다는 따스했다. “엉망으로 휘저어지고 싶다… 그런 건가요? 잔 속을 휘젓는 스푼보다는 휘저어지는 크림이나 커피가 되고 싶다는… 그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자신이 신진기에게 미련이 남아 이런다고 생각하는 건지, 배신감과 허탈함에 막 나가고 싶은 심리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가 자기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 건지, 이이제는 알 수가 없었다. 한참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에게 설명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휘저어지고 싶다는 건… 그건 맞는 얘기 같았다. 누군가를 휘젓기보다 휘저어지고 싶었다. 될 수 있다면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차근차근, 그러다 마침내 온 존재가 뒤바뀌어 버릴 때까지 휘저어지고 싶었다. 지금의 이 분노를 어딘가에 어떤 방식으로든 발산하고 싶었다. 자기 안에 쌓아두고 싶지 않았다. 내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좋고, 어떻게 해도 좋은데… 대신, 끝까지 해줘요. 할 수 있겠어요?” “그때 끝까지 못 하게 한 건 이이제 씨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남자한테 넣는 거, 아마 그건 호기심만으로 안 될 텐데요.” 이척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대신 차를 출발시켰다. 불이 모두 꺼진, 모두가 버리고 떠난 빈집이 그들의 등 뒤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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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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