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비하인드 맞선 [단행본]

김필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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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부탁으로 대신 나간 맞선 자리. 인하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어떤 여자가 나오든, 30분 안으로 예의 바르게 거절하고 돌아서는 것. 상대로 나온 정안은 단정하고 가녀린 인상의 여자였다. 차분하고 반듯하게 거절하는 모습이 역시나 맞선에 흥미는 없어 보였다. 인하가 자리에 앉은 지 딱 10분. 두 남녀는 미련 없이 담백하게 만남을 끝냈다. 어차피 다시 만날 일 없는 사이였으므로. 그런 줄 알았는데. 호텔 라운지 바에서 다시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아까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널브러진 빈 맥주잔과 와인 잔들. 그것도 부족했는지, 와인을 맥주처럼 잔에 가득 채워 단숨에 삼키고는 입가에 맺힌 와인을 대충 닦아 내는 손짓까지. 웬 대단한 술꾼이 거기 앉아 있었다. “제가 부끄럽지 않으면 합석하셔도 돼요. 오늘 제가 여기 라운지 바에 있는 와인들 다 거덜 낼 거거든요.” 정안은 너만 괜찮으면 나도 괜찮다는 식으로 두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자포자기하듯 솔직하게 털어놓는 정안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와인들 거덜 내는 데 동참하겠습니다.” 와인으로 물든 진한 분홍빛 입술을 쓰다듬으며, 저 벌어진 턱을 제 손으로 닫아 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 정안의 포크에 얹혀 있던 당근 케이크가 인하의 바지에 떨어졌다가 소파 바닥으로 굴러 들어갔다. “헉! 어떻게 해. 죄송해요.” “정안 씨, 괜찮아요. 빨면 돼요.” 정안은 당황해서 테이블 티슈를 뽑아 인하의 바지를 닦아 내면서 말했다. “그래도 크림이라 기름기가 있어서 힘들 텐데 어떡하죠. 아니, 왜 닦을수록 더 번지는 거야.” 닦으면 닦을수록 번지는 크림 자국 때문에 정안은 고개를 더 숙이고는 허벅지 전체를 닦듯이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아뇨, 아뇨, 정안 씨! 그만, 그만요!” “가만히 좀 계세요. 크림만 지울게요. 크림만. 왜 이렇게 많이 묻었지, 진짜.” “아뇨! 정안 씨, 그만요. 그만!!” 인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정안은 놀라서 인하를 바라봤다. 인하는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고, 그 아래 크림이 묻은 바지의 앞섶은……. “그거 왜 그래요?” “…….” “아니……. 그……. 아니, 왜? 뭘 했다고.” “……죄송합니다.” 와, 저게 저렇게 튀어 오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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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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