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백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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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짝사랑했던 소꿉친구가 죽었다. 병증을 닮았던 해묵은 사랑은 갈피를 잃고 그녀를 좀먹었다. 그렇게 남은 나날은 전부 슬픔에 잠겨 죽어 가리라, 수아는 속단했다. 어딘지 스산하고 소슬한 호랑이 그림을 침실에 들이기 전까지는. “수아야, 나야. 나 여기 있어.” 그것은 소꿉친구의 겉가죽을 뒤집어쓴 채, 밤마다 그녀의 꿈속에 찾아와 몸을 얽어 대며 사랑을 속삭였다. “나 보고 싶어 했잖아.” 젖은 입술이 귓불에 내려앉아 느른한 목소리로 귀를 간질였다. “너는 뭐 하루라도 아랫도리를 안 놀리면, 좀이 쑤시나 봐?” “좀이 아니고 좆이 쑤시지. 지금도 수아 아래에 쑤셔 박고 싶어.” 놈이 수아의 허리를 둘러 안으며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유순한 짐승처럼 애교를 부리는 꼴이 몇 해는 묵은 새끼 여우 같았다. “너는 아니야?” 곧이어 제 머리를 그녀의 허벅지에 얹더니 고개를 푹 파묻으며 흑흑, 우는 시늉을 했다. “걔보다 내가 더 예뻐. 내가 훨씬 더 사랑스럽게 굴 수 있어.” “…….” “그러니까 죽어서 사라진 새끼는 잊고 나 사랑해 줘.” 쿵쿵 뛰는 심장이 과연 사랑에서 비롯한 것인지, 공포에서 시작한 것인지는 구별이 어려웠다. 다만, 이 썩은 내 나도록 너절해진 사랑까지 놈이 범할 수 있다면 영원히 이 밤에 머물 수도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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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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