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마장동 칼잽이와 불편한 진실

언재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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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 마시고, 까탈 스럽고,눈 빛 만으로도 어떤 여자든 침대로 눕힐 수 있고,남들이 입을 수 없는 런어웨이에서 방금 내려온난해한 디자인의 슈트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하고7억짜리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걸 윙 도어를 사랑하는 그 남자…….를 찬 여자 우윤재.남자도 차고, 회사도 차고(왜냐 그 남자의 회사니까)기약도 없는 백수가 된 여자 앞에 나타난 그…… 분? or 그 놈?마장동에 사시는 전설의 칼잽이에게 삼각김밥 하나를 사주고 코가 꾀어버린 구구절절한 사연을 (본문 발췌) “변명 같지만. 내 지금껏 이런 미친 짓은 해 본 적이 없어서. 그쪽이 쉬워 보이거나 혹은 나쁜 맘으로 한 게 아니라. 안쓰러워서, 위로를 해 주려고 했는데……. 눈물 맺힌 얼굴이 너무 예뻐 보여서……. 그래서 그랬던 거야. 미안해, 정말 나쁜 맘은 없었어.” 남자는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이유를 다 대려는 듯했다. 그런 남자의 목소리는 수염이 없어서 그런지 마치 한겨울에 떨어져 내리는 찬물처럼 차갑고 명료하고 깨끗하게 사람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몽롱하고 근사한 성우의 목소리처럼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의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정확하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자 남자의 말이 슬슬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럴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래 본 적이 없다. 자신이 예뻐 보여서 저도 모르게 실수한 거다……. 참, 생일 선물치고 근사한 말 아닌가. 당장이라도 기쁘게 용서해 주어야 할 만큼. 게다가 싸한 치약 냄새까지 풍기며 남자는 또다시 한 발 물러섰다. 술도 안 먹었는데, 사 온 소주가 냉장고 안에서 절 잡숴주세요 하고 몸을 식히고 있는데 윤재는 술에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감정이 풍랑 치는 바다 위의 파도 조각처럼 울렁거리며 위아래로 날뛰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 그리고 아까 닿은 건 저 남자의 하얗고 창백한 얼굴에 있는 새빨간 입술이었구나. “여자가 예뻐 보이면 아무한테나 그래요?” 윤재의 따지는 듯한 말에 그가 마치 정신이라도 차린 듯 다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대답했다. “아니. 단 한 번도 그래 본 적 없어. 하지만 방금 한 행동의 이유를 대라고 하면 그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어.” 남자는 자신의 말을 이해 못하는 여자가 답답했다. 자신은 늘 의사 전달이 명확하다고 생각했는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니 곤란스러워하는 남자의 표정이 고스라니 드러났다. 눈을 보니 마냥 어린애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로운 눈매가 한 성격하겠구나 싶다. 게다가 차가운 목소리까지 더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는 게 딱 맞았다. 그런데, 왜 억지를 부리고 싶은 걸까? “여자랑 키스 첨 한다고 하면 누가 믿을 거 같냐고요?” 무안한 건지, 기분이 나쁜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이라면 처음인 거지. 난 변명 삼아 없는 사실 막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니…….” 남자의 목소리가 막혀 들어갔다. 윤재가 먹어 버린 것이 맞다.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재는 두부를 썰다가 물기도 채 닦지 않은 손으로 남자의 물기 젖은 생머리가 덥수룩한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신발을 벗은 상태에서는 키 차이가 확연하니까. 아까도 저 남자가 한참 고개를 숙인 거였지. 남자가 먼저 하면 성희롱이고, 치한이 되는 거다. 대신 여자가 먼저 하면 과감하고 막 나가는 여자인 거였다. 우울해. 슬퍼. 기꺼이 자신의 욕실을 희생해서 환경 공해를 유발하는 사람 하나 구제해 줬으니까 이런 미친 짓 정도는 용서받을 수 있어. 나이를 잔뜩 먹으니, 낼 모레면 서른인데 욕구불만 정도는 풀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머릿속에서 새까만 악마가 마구 귀에다 속삭이고 있었다. 그 악마가 윤재 자신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상큼한 샴푸 냄새가, 싸한 치약 냄새가, 자신이 예뻐 보인다는 남자의 속 시커먼 변명이 대책도 없이 자신을 망가뜨린 거라고 외치고 싶었다. 앞으로 5분 후에는 대체 어찌 낯짝을 들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윤재의 입술이 남자의 젖은 입술에 닿았다. 놀라서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남자는 엉거주춤한 채로 윤재가 발뒤꿈치마저 들고 목덜미를 휘감은 통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여자의 입술에 짠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찌해야 할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기분은 좋다. 이런 느낌인가? 어이 남자 진짜 처음이야? 왜 남자의 젖은 입술은 움직이질 않는 거야. 에잇, 모르겠다! 짠 맛이 느껴지는 여자의 입술에서 뭔가가 움직거리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뻣뻣해지는 남자의 목덜미를 잡은 손에는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벌어진 여자의 입에서 뭔가가 나와서 빨리 문을 열라고 재촉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좋은가. 당황스런 남자가 벌린 입속에 들어선 그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입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갑자기 저 밑바닥 어딘가가 요동치는 것만 같다. 울렁거리나, 속이 안 좋은가. 그러나 머릿속에 뭔가 생각할 틈이 없다. 이 움직이는 말랑거리는 것을 열심히 쫓아 다녀야만 직성이 풀릴 것만 같다. 이게 뭔지 알고 나니 어느샌가 자신의 것이 여자의 입속에 들어가 있고 마치 사탕을 빨아 먹듯 살살 빨아들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하다간 무릎에 힘이 풀려 버릴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손을 내밀어 무언가 잡아야 하기에 손아귀에 들어오는 여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아쥐려고 했을 때 갑자기 자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울렁거리게 했던 뭔가가 야박하게 쏙 사라져 버렸다. 그러고는 짭짤하고 매끄럽고 보들거리기까지 하던 것도 사라져 버리고 목덜미를 감싸 쥐었던 손에도 힘이 풀리더니 제자리에 가 버렸다. 왜 눈을 감았는지 영문도 모르는 그는 눈을 떴다. 이게 뭐…… 임? 눈앞에 곤란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여자가 입술을 손으로 가린 채 서 있다가 얼굴이 아주 다채롭게 변하고 있었다. 대충 당황스러움과 화난 얼굴이 교체되는 것으로 보아 여자의 이 행동에 대해 무언의 설명해 주고 있었다. 미쳤지……. 서른이 가까워지니까 욕구불만이 생기나. 이래서 남자들은 돈을 싸 들고 가서 여자를 사는 거야. 그거나 이거나 뭐가 달라. 옷 사 입히고 씻기고 먹인 다음에 잡아먹어야 하는 건가. 얄상하고 괜찮게 생겼으니 이제 침대로 끌고 가야 해? 윤재는 스스로 당황스러워서 말을 잇지를 못했다. 눈앞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진을 쳐다보고 있는 저 남자는 대체 누군지. 저 얄상하고 창백한 얼굴을 가진 남자는 왜 여기 와서 자기한테 이런 꼴을 당한 건가. “이제 가요. 옷은 가지고 가던지. 아님 버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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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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