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귀왕의 비

진이원

5

“비께서 걸음이 느리신 건가, 아니면 준비한 이들의 손이 느린 건가?” 입은 웃고 있지만 주위를 훑어보는 귀왕의 눈엔 은근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 목이 떨어질까, 시종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건 희완의 뒤를 따르던 담리도 마찬가지였다. “소, 송구합니다. 소녀의 걸음이 느려 귀왕 전하를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비의 걸음이 느렸다?” “예. 오는 내내 혼인을 축하한다 말해 주는 것이 기뻐서….” 고개를 푹 숙인 희완이 가늘게 떨리는 두 손을 맞잡았다. 괜히 나서 제 명을 재촉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이들이 벌을 받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도 없었다. “그러한 이유라면.” “…….” “기꺼이 기다려 드려야지.” 웃음기 섞인 귀왕의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가 떨고 있는 희완의 손을 잡아 손등 위에 입을 맞추었다. 놀라 고개를 들자 붉은 너울이 바람을 타고 크게 펄럭거렸다. 가라앉는 너울 사이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치 귀여운 토끼 한 마리를 눈앞에 둔 양, 즐거운 얼굴이었다.

불러오는 중입니다.
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