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페인 첫사랑

진도은

831

남자의 이름도 몰랐다. 그저 주문을 받고 음료를 내주며 몇 마디 짧게 해 본 게 다였다. 김재현은 희미하게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키가 크구나 싶었지만 정말 컸다. 목도 굵고 덩치도 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거 같은데.” “빨리, 빨리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커피 말고, 다른 거 줄 수 있을까요?” 쿵쿵. 요동치던 심장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왔다. “번호. 괜찮으시면 번호를 받고 싶은데요.” 김재현이 빠르게 두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벌겋게 열이 오른 귓불에서는 얼음으로도 녹이지 못할 만큼 불이 나고 있었다. * * * “재현 씨한테 번호를 물어보고 매주 약속을 잡았던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말해야 했는데… 너무 늦었네요.” 본능적인 불안함이었다. 우지훈이 할 말이 좋은 선물은 아니구나. “큰아버지가 계획 중인 정략결혼을 망칠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재현 씨한테 접근한 거였습니다. 재현 씨랑 호텔에 간 것도 다 그런 소문을 위해서였고.” 명분. 소문. 김재현이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우지훈이 조금의 관심이나 호감이 없었더라면 남자인 자신과 키스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단순한 명제가 김재현을 부추겼다. “계속 사귀어요. 이대로 계속 만나고 싶어요. 지훈 씨가 시작했으니까 끝은 제가 결정할래요.” 김재현도 안다. 억지에 가깝다는 걸. 보통의 연인이 이러한 관계를 이어 나가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 어떡해. “싫어요. 지훈 씨가 저 좋아하게 만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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