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요정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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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의 ‘새’. 날개 꺾인, 제 어머니의 전리품. 메마른 로헨에게, 왕 엔릴은 이유 모를 시혜를 베푼다. 처음엔 불쌍해서, 그리고…… 서로가 자신을 적시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로헨은 엔릴에게 사랑이 아닌 다른 대가를 요구하고, 엔릴은 그런 그녀에게 기꺼이 이용당해주겠다며 조건을 내미는데― “아내 행세를 하는 건 어때. 네가, 나의.” [본문 중에서] 엔릴이 그랬듯 제대로 된 키스를 돌려줄 자신은 없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그녀의 각오를 전달하기엔 충분하리란 직감이 들었다. “하, 할 거예요.” 잔재처럼 남은 쾌락으로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마른침을 삼켜 숨을 가다듬은 그녀가 다시 한번 또렷하게 답했다. “할 수 있어요.” 힘이 다했다. 어쩌면 용기가 다한 것일 수도 있겠다. 로헨의 손이 엔릴의 볼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는 헐떡이는 그녀를 굳은 채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몸을 일으키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로도 모자라다는 듯 손을 들어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던 엔릴은 겨우 다음 말을 꺼냈다. “각오가 정말… 대단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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