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우리 사이에 사랑은

gujo

68

타인의 호의를 ‘빚’으로 여기며 가시를 두르고, 유일한 가족이자 쌍둥이 동생인 지수를 위해 살아가는 지완. 세상의 변두리를 떠도는 외로운 삶에 지나치게 친절하고 다정한 남자, 이규원이 들이닥친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 사랑에 빠지면 맞이하게 될 불 보듯 뻔한 결말. 그가 지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챈 지완은 불안에 휩싸여 더 이상 다가가지 말 것을 경고하는데……. “지수가 안 되면, 너는 돼?” 가벼운 흥미와 호기심을 담은 눈. 습관처럼 미소를 머금은 입술. “지수한테 잘해 주는 건 그만둘게. 네가 나랑 만나 준다면.” 얄미울 정도로 느긋한 얼굴을 한 이규원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건네 온다. *발췌 “아저씨는 제가 걔랑 만났으면 좋겠어요?” 목소리 끝에 묻어난 절박함을 이규원이 눈치채지 못했기를, 지완은 간절히 바랐다. 이규원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정한 눈과 부드럽게 웃는 입술이 지완을 향했다. “네 나이에는 풋풋한 연애를 해야지. 그동안 나랑 놀아 주느라 고생했어.” 이규원은 그날 지완의 고백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말했다. 함께 보낸 시간을 그저 놀았던 것이라 표현했다. 너와 나의 사이에 사랑은 없고 연애만 있었다는 뜻으로 들렸다. 상냥한 미소에서 소리 없는 말들이 읽혔다. 너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고, 네 감정은 어린 날의 착각에 불과하다고. 지완은 소나기 아래를 걷는 사람처럼 비참함에 흠뻑 젖었다. 그의 앞에서 숨김없이 드러냈던 심장이 흙바닥을 나뒹구는 것 같았다. 같은 마음이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다만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이규원은 재고할 여지조차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지완은 순순히 대답하며 차 문을 열었다. 인사를 하고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그러다 불현듯 멈춰 서서 마른 눈가를 문질렀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긴 시간을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와서 우는 방법을 잊은 것인지도 몰랐다.

불러오는 중입니다.
1 치명적인 끌림
2 입술로 막다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