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대위님은 가면무도회에서

공작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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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는 해군 대위 알프리드 파커. 열두 살 때 부모님의 재혼으로 의붓누이가 된 세 살 위 에반젤린을 남몰래 짝사랑해온 그는 매형의 부탁을 받고 누이가 참가한다는 ‘귀부인들의 수상한 모임’을 염탐하게 된다. 충격적이게도 ‘수상한 모임’의 정체는 음란한 가면무도회였고, 누이를 찾아 무작정 무도회장에 잠입한 알프리드는 가면을 쓴 에반젤린과 정면으로 마주치는데……. * “이런 데 오며 군인으로 가장하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니? 누가 해군에 제보라도 하면 탈탈 털릴걸… 어디 봐, 견장이 없는 거 보니 누구 걸 슬쩍해온 모양이네. 형님?” 옷 위로 몸을 더듬는 누이의 손길이 당혹스럽다. 평소 매무새를 고쳐 주던 것과 완전히 다른 손놀림이 옷 아래까지 열기를 남겼다. 읏, 깨문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온 신음에 에반젤린이 웃으며 고개를 올리고 입을 벌렸다. “하지만 오늘은 봐줄게. 난 갈색 머리도, 해군도… 아주 좋아하거든.” 설마 이거, 들켜서 놀림당하고 있는 거 아냐? 알프리드는 스스로도 정신 나간 생각을 하며 멍청히 입술을 열었다. 갈색 머리의 해군 군관은 이 도시에만 백 명은 있을 것이다. 자신이 누이 같은 아름다운 금발이 아니라 흔하디흔한 갈색 고수머리라는 사실에 이렇게까지 감사해 본 일이 없었다. 비록 지금 그 머리채는 자신에게 입 맞추는 누이의 손에 잡혀 당겨지고 있지만 말이다. 키스까지 저질러 버린 이상 가면을 벗고 에반젤린을 설득한다는 선택은 할 수 없었다. 질척해진 남자의 입술 위로 남동생의 얼굴이 나타났을 때 누이가 어떤 표정을 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이 키스는 오로지 혼자만의 추억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다. ‘추억?’ 그런 단어를 생각해낸 자신을 비웃으며 알프리드는 벽을 짚어가며 슬금슬금 문 쪽으로 움직였다. 별 비겁하고 웃긴 놈이라는 욕을 얻어먹더라도 여길 나가 이 가면을 벗어버리면 그뿐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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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치도록 아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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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상화 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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